가끔 우리가 벌레 같다는 생각을 해, 라고 경주 언니가 나에게 말 한 적이 있었다. 수령이 오래 된 듯한 갈참나무 아래를 지나다가 불쑥 나에게 말했다. “이렇게 오래 살아가는 것들 아래 있으면 더 그런 생각이 들어. 우리가 해치지만 않으면 어쩌다 불이 나거나 벼락만 맞지 않으면 수 백 년도 살 수 있는 것들 아래에서, 이렇게 짧게 꼬물꼬물 살아가는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다음 달, 다음 해, 아니, 오 분 뒤 일조차 우린 알지 못하잖아. 그렇게 시간에 갇혀서 서로 찌르고 찔리면서 꿈틀거리잖아. 그걸 내려다보고 있는 존재가 어딘가 있다 해도, 그가 우릴 사랑할 것 같지 않아. 우리가 상처 난 벌레를 보듯 혐오하지 않을까? 무관심하지 않을까? 기껏해야 동정하지 않을까?”(한강,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 중에서)
*** 우리가 진흙에서 뒹굴며 싸우고 있는 개들 볼 때, 눈쌀을 찌푸리며 외면하려 한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폭력과 파괴와 살인과 전쟁을 보면서, 그 어떤 존재가 좋아할 것인가.
하느님께서 정말 자비로우시며, 사람을 돌보시는가? 이 말은 태어나고 고통받고 늙어 병들어 죽는 시간속의 구체적인 인간의 삶과 대면하게 되었을 때, 누구든 한 번 쯤 진지하게 하게 되는 질문이다. 그리고 이 질문에 자기자신에게 진솔하고 양심적으로 응답하는 것이 신앙의 여정이다. 신앙은 하느님과 함께 사는 삶이지만,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철저하게 인간적이어야 하며, 인간적인 것을 기꺼이 포기하고 깡그리 무시할 수 있는, 양립 불가능한 두 세계를 한사람이 살아내는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