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넘어 만난 초등학교 동창들을 알아 볼 수 없었다. 길거리에서 만났다면 알아 서로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내 앞에 앉아 있고 나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람이 옛날의 덕순이임을 알게 되었지만, 낯선 사람과 다를 바 없었다. 나를 본 덕순이도 그랬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덕순이가 나를 **으로 받아들이고, 내가 내 앞에 있는덕순이가 덕순임을 서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우선 먼저, 우리 스드로 내가 **이고 덕순이라고 자기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것을 자기 드러냄/계시라는 거창한 말로 표현합니다. 두번째는 이곳에 있는 **이가 옛날의 **이고, 이곳에 있는 덕순이가 옛날의 덕순이임을 증언하는 제3의 사람, 덕배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세 사람, **과 덕순이와 덕배의 말을 들으면서 명숙이가 우리에 대해 신뢰하며 대화속으로 들어오게 된다.
오랫만에 만난 동창들을 서로 알아보고, 인정하고, 계속해서 대화를 할 수 있게 하는 그 역동성은 신앙에도 일정부분 적용될 수 있다. 먼저, 하느님의 자기 계시가 있어야 한다. 당신이 어떤 존재인지 당신의 아들 예수를 통해 드러내신다. 둘째, 이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임을 증언하는 세례자 요한이 있다. 마지막으로 나는 하느님의 자기 계시인 예수님과 세례자 요한의 말을 받아들일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