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이에 칼이 있었네”라고 시작하는 한강의 <희랍어 시간>은 마흔 살된, 한 여자가 어느 날 갑자기 말을 잃어버리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외부의 소리와 다른 사람의 말을 모두 들을 수 있는데, 말을 할 수 없는 ‘실어증’에 걸린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잃어버린 말을 찾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고대 희랍어를 가르치는 사설 학원에 등록합니다. 고대 희랍어를 가르치는 강사는 열일곱 살 때부터 서서히 시력이 약해지기 시작해 마흔 살이 된 지금은 거의 모든 시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모든 것이 뿌옇게만 보이는 상태로 되었습니다.
이 두 사람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이런 일이 일어난 뒤, 이들이 찾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현대에 들어와 사람들에 의해 오염되고 변질되고 변색되고 왜곡되어버린 말과 글에서 우리를 일치시키고 우리를 하나되게 해주는 참된 말과 글을 찾아나가는 여정으로 읽을 수 있지 않을까? 나와 너, 우리와 너희, 이곳과 저곳, 세상과 저너머로 분리되어 있고 심지어 이들이 분열되어 파편만 떠도는 우리의 삶. 그런 삶을 무엇이라 부를 수 있을까? 이런 삶 속에서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답게 사는 것인가?
이런 질문을 끊임없이 제기하면서, 참된 것을 향해 나가는 여정. 이 여정은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깊은 바다의 침묵과 그 어떤 빛도 볼 수 없는 짙은 어둠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속에서 그속에서 벼려진 말과 글을 다시 찾게 될 것이고, 그것을 칼집 속에 넣은 칼처럼 우리 몸속에 품고 깊은 바다에서 세상으로 떠오르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 ”하늘과 땅을 사라질지라고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에 의해 변질되고 짓밟힐 수 있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는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어도 영원히 살아있는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찾고 추구하며 믿고 따르는 사람들, 이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들의 믿음에 대해 교회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신앙의 빛은 인간 실존의 모든 측면을 비출 수 있기 때문에 유일합니다. 이 강력한 빛은 우리 자신에게서 나올 수 없습니다. 그것은 더욱 근원적인 원천에서 나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그 빛은 하느님으로부터 나와야 합니다. 신앙은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에게 당신의 사랑을 제시하시는 살아 계신 하느님과의 만남에서 생겨납니다.“(교황 프란치스코 회칙 <신앙의 빛> 4항)
<희랍어 시간>은 말을 잃어버려 침묵속에서 살 수 밖에 없는 한 여자와 빛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글을 해독할 수 없게 된 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여자와 희랍어 강사가 건너갔던 침묵과 어둠의 세상.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예수님께서 가셨던 십자가 길과 그분의 죽음을 연상하게 됩니다. 모두 참된 것과 참된 언어, 생명의 말씀과 영원한 말씀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런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