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은 나무 아래로 초록 비단처럼 부드럽게 펼쳐져 있다. 태양이 대지를 내리쬐고 고요속에서 버람에 나뭇가지들이 일렁였다.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이 모든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축적된 경험으로 묘사해 보려고 노력해 보았지만 능력 밖의 일이었다. 실재는 우리가 알 수 있는 영역 너머에 있다. 경험하는 것의 실재는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실재에 접근하는 비결은 경험이 선입견에 좌우되지 않고 대상안에 빠지는 것이다. 파악하려고 애쓰지 말고 있는 그대로 대상안에 잠기는 것이다. (<토마스 머튼의 시간>, 1941년 9월 27일)
☞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글로 써보고 싶을 때마다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알게 된다. 경험을 깊이 하지 않은 탓도 있지만 이것보다는 경험한 것을 그러모아 생각을 깊게 하고, 경험과 자기 생각이 버무려진 다음 숙성되는 시간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겪었다 하더라도 자기 속에 있는 것을 밖으로 끌어내어 글로 표현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토마스 머튼은 어떻게 했을까? 아마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관찰하고/체험한다-이것에 대해 숙고한다-관찰하고 체험한 것을 보충해 줄 수 있는 다른 것을 찾아낸다-이것들을 적당한 순서로 나열한다-글을 쓴다-수없이 고쳐 쓴다. 다시 말해, 생활속에서 글감을 찾고, 이것에 대해 숙고하고, 자기가 알고 있는 것과 연관시켜 글의 내용을 심화시키고 확장한 다음, 글을 쓰고, 엉성하게 표현된 글을 수없이 다듬어 가면서, 자기가 생각하고 쓰고자 하늘 실재에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게 된다. '(자기 앞에 있는) 대상에 빠지고, 대상안에 잠기는' 것은 그것에 대해 암중모색하는 시간이고 기도하는 시간이고 관상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글을 통해 하고자 하는 일이 현실 너머에 있는 실재에 도달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