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한 학문도 실재 전체를 포착할 수 업다. 각각의 학문은 자신의 고유한 관점과 권한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을 절대화해서는 안된다. 중요한 사실은 한 가지 설명은 다른 설명을 배제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보완하고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학문들의 다양하고 상이한 관점들은 단지 어떠한 개별 학문도 극복할 수 없는 인간 인식의 한계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이 다양한 관점들은 실재 그 자체에 기인한다. 세계와 인간이라는 실재는 실로 다양한 양상, 층, 차원을 보여준다. 한 가지 차원을 절대화하는 사람은 다른 차원들에는 장님이 된다. (<나는 무엇을 믿는가>, 한스 큉/이종한, 분도출판다, 2022, 176)
☞ 학문한다는 것은 말과 글과 숫자와 도형과 소리 등을 이용해 어떤 실재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다. 그 실재를 설명하기 위해 그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도구를 사용한다 하더라도 실재를 그대로 설명할 수 없다. 설명하기 위해 자신의 해석과 해설이라는 과정을 거쳐 정제되었기 때문이다. 정제된 소금이 짠맛은 있지만 막소금이 아닌 것처럼.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이 실재와 얼마나 거리가 있는지 알고, 다른 사람도 그 실재에 대해 자기만큼 알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경제학자가 돈에 대한 것을 알고 있듯이, 길거리에서 호떡 팔고 있는 사람도 돈에 대해서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