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순간, 그시간, 그때 누릴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몸상태가 좋지 않아, 하던 일로부터 벗어나 있습니다. 평소에 얼마나 쫒기며 살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누가 쫒아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발걸음을 쫒아오는 소리로 착각했던 것일까요? 베토벤의 전원, 운명, 합창 교향곡을 들었습니다. 평소에 하지 않았던 일입니다. 음악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현재에 충실하다는 말입니다. 그시간에 충실하지 않으면 음악을 들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어떤 형태의 음악이든. 주황색빛 정원등이 켜진 달빛 아래서 잎파리 하나없는 나뭇가지 사이에 걸린 달을 보면서, 도로를 오가는 자동차 소리와 함께 교향곡을 듣는 일은 그시간에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때가 언제일지 모르지만 몸상태가 좋아졌을 때는 오늘 저녁과 같은 날을 결코 다시 오지 않을 것입니다. 어둔 과거속으로 사라졌거나, 흔적도 없이 공중으로 사라져버린 시간일 것입니다. ‘현재를 살아라’라는 말을 많이 하고 들었습니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시간이 흘러가면, 절대로 그 시간으로 되돌아갈 수 없습니다.
토마스 머튼 흉내를 내기 위해, 일기를 써보려고 했지만 할 수 없었습니다. 너무 쓸 것이 많았거나, 아무런 의미가 가치가 없는 것들 뿐이었습니다. 글을 쓰는 것은 내속에서 무엇인가 뽑아내는 일입니다. 내속에 있는 힘이 밖으로 나가는 일입니다. 그래서 몸이 건강하지 않으면 글을 쓸 수 없게 됩니다. 글을 많이 쓰게 되면, 몸이 허약해 질 수도 있을 것처럼 보입니다. 그것이 어떤 형태의 글이든.
요새 즐겨하는 일은 낙엽으로 덮힌 숲길을 맨발로 걷는 일입니다. 100미터 정도되는 숲길을 천천히 갔다왔다합니다. 낙엽이 발에 밟히면서 사각거리는 소리가 납니다. 바람이 차갑지만 몸이 움츠려 들게 하지 않습니다.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들입니다. 껴입고 있었던 옷을 벗어 길옆 십자가길 기도의 돌멩이 위에 놓습니다. 웃옷을 모두 벗어제끼고 일광욕을 하기도 합니다. 수도원 안에 있는 숲길이어서 사람들이 들어올 수 없는 곳이어서 마음대로 할 수 있어 좋습니다. 십자가의길기도가 있지만, 사람들이 별로 오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맨살로 햇살을 받아들이고, 바람이 스쳐가는 것을 느낍니다. 대잎이 파르르 떠는 것이 보입니다. 조금 더 따뜻해지면 뱀이 나올 것이고, 그때는 맘대로 맨발걷기와 옷을 벗고 나무 계단에 앉아 일광욕을 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해보지 않았던 일들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것입니다.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던 이곳 수도원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