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산속 각자의 암자에서 홀로 사는 두 스님이, 이따금 만나 서로 얼마나 열심히 수행하는지 경쟁하고, 내기도 하고, 팽팽한 농담을 주고 받아요. ... 그러다 눈보라 치는 밤이 오면서 분위기가 바뀌어요. 길 잃은 여자가 하룻밤 재워줄 것을 청하는데, 노힐부득은 유혹이 두려워서 거절해요. 하지만 달달박박은 여자를 암자로 들여요. 다은 이야기는 아마 선배도 사실 거예요. 언 몸을 녹이도록 달달박박이 나무 욕조에 따뜻한 물을 채워졌는데, 여자가 함께 목욕을 하자고 말해요, 마침내 그 밤이 지나가고, 아침 일찍 노힐부득이 달달박박의 암자에 찾아가죠. 친구가 유혹에 넘어갔을 거라고 짐작하면서. 그런데 나무 욕조도, 그 안의 물도 모두 황금이 되어 있었어요. 달달박박은 황금 부처가 되어 있고요. 여자가 관음보살이었던 거죠. 그 황금의 물에 노힐부득도 몸을 씻고는 함께 부처가 돼요. (한강, <눈 한송이가 녹는 동안> 중에서)
삼국유사에 나온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와 관련될 듯한 성경 구절이 있다. “형제 여러분, 형제애를 계속 실천하십시오. 손님 접대를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손님 접대를 하다가 어떤 이들은 모르는 사이에 천사들을 접대하기고 하였습니다. 감옥에 갇힌 이들을 여러분도 함께 갇힌 것처럼 기억해 주고, 학대받는 이들을 여러분 자신이 몸으로 겪는 것처럼 기억해 주십시오.”(히브 13,1-3) 낯선 사람들을 기꺼이 맞아들였는데, 이들이 하느님의 천사들이었다는 이야기는 창세기 19장에 나오는 롯에 관한 이야기다. *****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에서는 작가 한강은 삼국유사의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바꾼다.
“함께 있어 주세요. 젊은 승려가 멀찍이 떨어져 서서 대답한다. 그건 안 된단다. 제발,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만. 소녀는 나무 욕조의 물속에 들어가 있는데, 이상하게도 그녀의 머리에 쌓인 눈이 녹지 않는다. 그 눈송이들은 커다랗게 확대한, 눈의 결정 모양을 한 빛무뉘가 무대 뒤편 검은 벽에 하얗게 비쳐 있다. 그 결정들을 홀린 듯 바라보며 승려가 묻는다. 왜 머리 위 눈이 녹지 않을까? 시간이 흐르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우리가 시간 밖에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