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그의 손을 잡고 걸었다. 수차례 모퉁이를 돌고 비탈을 오르는 동안, 세상은 어두워지고 하나둘 먼 데서 불빛이 밝혀졌다. 그녀는 그에게 물었다. 우리,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있는 거야? 난 널 따라오고 있었어. 우물 속처럼 깊은 음성으로 그가 대답한다. 그의 야윈 손은 땀에 젖었고, 안경알 속의 눈은 어렴풋이 눈물에 흐렸다. 나도 네가 알고 있는 줄 알았어. 문득 놀란 듯하던 그의 얼굴이, 앓다 나온 아이처럼 이내 쓸쓸해진다. 괜찮아, 하고 그녀는 말한다. 내 어깨를 좀 안아봐. 그가 그녀의 어깨를 안았을 때 그녀는 안다. 키가 크지도 등짝이 넓지도 않은 이 사내, 수십 억 사람들 가운데 그저 한 사람, 태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어디쯤 존재하는지조차 모르고 살아갈 수 있었던 사내의 품에, 그녀가 일생 동안 찾아 헤매온 온기가 다 들어 있었던 것을 안다. 돌아가자. 팔을 풀며 그가 말한다. 그녀는 묻는다. 돌아가는 길을 모르잖아? 그래, 몰라. 그럼 돌아갈 수 없는 거잖아. 그의 손이 외투 주머니 속으로 숨는다. 어깨가 조용히 소스라친다. 그가 묻는다. 넌 무섭지 않아? 무서워. 난 네가 무서워하고 있는 줄 몰랐어. 괜찮아. 곧 밤이 될 테니까. 그는 침묵한다. 침묵 속으로 박명이 스며든다. 땅거미가 내리면서 하늘과 땅이 한 몸으로 푸르러, 어느 순간부턴가 경계를 알 수 없어졌다. 젊은 그의 머리털이 희끗희끗 세어온것을 그녀는 안다. 그의 이마에 깊숙한 고랑이 패기 시작한 것을 안다. 아주 어두워지면... 그가 말한다. 아주 어두워져서 아무것도 안 보이고 안 만져지고 안 들리면, 꿈속같이 고요해지면, 그 캄캄한 곳에서, 그때... 그는 말을 끊는다. 그때? 그때 무서워하거나 쓸쓸해 하지 말아. 내가 있다는 걸 잊지 말아. 그녀는 불쑥 화가 난 시늉을 한다. 왜 그런 말을 해. 너나 잊지 말아. 그의 얼굴이 어둠에 묻힌다. 그의 입술이 보이지 않는다. 그의 목소리가 잦아든다. 더 어두워졌어. 계속 어두워질 건가 봐. 우린 계속 이렇게 걸어가면 되는 건가? 멀리서 깜박이던 불빛들이 더 멀어져갔다. 전생에서처럼 아득하게 그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의 어깨는 구부정했고 발걸음은 더뎠다. 흰 날갯죽지 같은 그의 머리털이 어둠 속에 어른 거렸다. 축축하게 땀에 젖은 손, 그의 손을 잡고 그녀는걸었다. (한강, <세월> 전문)
*** 나는 돌아갈 길을 몰라도 가고 있다. 왔던 길을 잊어버린 것인지, 잃어버린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돌아가고 있다. 돌아가는 길을 모르지만 가고 있는 길이어서, 두렵다. 떠나왔던 곳이 아니라 다른 곳에 도달할까 봐. 나와 함께 살았던 사람들이 있는 곳이 아니라, 낯선 사람들만 모여 사는 곳으로 갈까 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