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은 그 전체가 영혼의 도구이며 표현이다. 영혼은 제 집에 들어앉아 있는 사람처럼 그저 몸 안에 머물러만 있는 게 아니라 지체 하나하나에서 속속들이 작용한다. 영혼은 몸의 모든 선과 자태와 움직임에서 드러난다. 그중에서도 얼굴과 손은 영혼의 뛰어난 도구이며 거울이다. ... 손이란 말은 참으로 아름답고 위대한 것이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손을 주신 것은 우리가 “그 안에 영혼을 들고 다니기 위해서”라고 교회는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거룩한 언어인 이 손을 존중하지 않을 수 없다. 손은 영혼의 내밀을 말해준다. 그러나 또한 마음의 해이와 잡념과 그밖에 좋지 못한 것도 드러낸다. (<거룩한 표징>, 로마노 과르디니/장익, 분도출판사, 1976, 15-17)
*** 손가락을 움직이면 단어가 찍혀나온다. 산과 들과 바다가, 슬픔과 기쁨과 억압된 분노가, 희망과 절망과 체념이, 나와 또 다른 나와 그사람이, 만들어진다. 지금까지 궁금해했던 질문이 나타나고, 어렵게 찾아낸 해결의 실마리가 드러나고, 침묵과 억지소리와 마음을 파고 드는 말이 만들어진다. ...
마음가는 대로 색을 따라간다. 의식하지만 의식하지 않고 따라간다. 색과 관련된 들었던 말들에 신경쓰지 않는다. 머리로 살았던 삶에 대한 보상을 해 주는 시간이다. 분심이 들지만 그냥 분심일 뿐이다. 손이 움직여 마음을 집중하게 해 준다.
”그것이 다시 왔어.“라고 말하는 그순간부터 말을 잃어버린 여자가 있었다. 말을 하지 못하고 살아야 하는 불편함도 불편함이지만, 말없이 살 수 있음에 대한 부러운 마음도 있다. 참된 말을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그 말을 찾기 위해 어디로 가야할까. 그 말을 찾고 만난다면, 지금의 내가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조금 나아질거라는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