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성가정 축일입니다. 12살 된 소년 예수님이 요셉과 마리아와 함께 예루살렘 성전을 순례하며 일어났던 일에 대해 들었습니다. 얼마 전 읽었던 <눈물꽃 소년>에서 박노해가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소년과 소녀, 특히 자기 마음속에 살아있는 소년에 대해 쓴 글이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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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자기 안에 소년 소녀가 살아있다. 어느덧 70성상을 바라보는 내 안에도 소년이 살아있다. 내 안의 소년은 ‘눈물꽃 소년’이다. 해맑고 명랑한 얼굴로 달려와 젖은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곤 한다. 돌아보면, 인간에게 있어 평생을 지속되는 ‘결정적 시기’가 있다. 그 첫 번째는 소년 소녀 시절이다. 인생 전체를 비추는 가치관과 인생관과 세계관의 틀이 짜여지고, 신생의 땅에 무언가 비밀스레 새겨지며 길이 나버리는 때. 단 한 번뿐이고 단 하나뿐인 자기만의 길을 번쩍, 예감하고 저 광대한 세상으로 걸어나갈 근원의 힘을 기르는 때. 그때 내 안에 새겨진 내면의 느낌이, 결정적 사건과 불꽃의 만남이, 일생에 걸쳐 나를 밀어간다. ...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 깊은 물음이 울려올 때면 나는 내 안의 소년을 만난다. 간절한 마음과 강인한 의지가 살아 있던 눈물꽃 소년으로 돌아가 다시 힘을 길어 올린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누구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은 없다. 나의 유산은 결여와 상처, 고독과 눈물, 정적과 어둠이었다. ... 돌아보면, 내가 진정으로 살았구나 기억되는 순간은 영혼의 순수가 가장 빛나던 시간, 삶의 정수만을 살았던 소박하고 순정하던 날들이었으니. 언뜻 은밀하고 무심하던 어린 날의 시간이 실상 가장 밀도 높고 충만한 생의 시간이었고 거기 잊히지 않는 나의 절정 체험이, 아직 풀리지 않는 생의 신비가, 굽이쳐온 생의 원점이 빛의 계단처럼 놓여있으니. 길 잃은 날엔 자기 안의 소년 소녀로 돌아가기를. 아직 피지 않는 모든 것을 이미 품고 있던 그날로.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앞을 향해 달려나가는 영원한 소년 소녀가 우리 안에 살아있으니. 그날의 소년이 오늘의 너에게 눈물꽃을 건넨다. (<눈물꽃 소년>, 박노해, 느린걸음, 2024, 239-2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