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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1일, 화요일
* 콘야(이코니온)
11세기 셀주크 투르그 제국의 수도였으며, 13세기 이슬람 신비주의 메블라나 첼라래딘 루미(1207-1273)가 이슬람 신비주의를 선양했던 곳이다. 바오로 사도는 제1차 선교 여행 때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 이어서 여기서 유다인들과 이방인들에게 선교했다(사도 14, 1-7).
* 메블라나 첼라래딘 루미(1207-1273)
페르시아의 천재 시인. 지금의 아프가니스탄 발흐에서 탄생. 10세기 이후 서남아시아에서 '문학의 신'으로 불린다. 페르시아 정신세계의 토대를 다진 사람이며, 신비주의의 본질, 교리, 교훈을 비유, 우화, 일화, 이야기 등의 형식을 사용해서 읊었다. 그의 아버지가 당시의 술탄 모함마드 콰레즘샤의 학정에 못이겨 루미를 데리고 여행을 하다가 콘야에 정착한다. 루미는 아버지로부터 학문의 기초를 닦았고 아버지가 타계한 후 바르한 알딘의 문하생이 된다. 루미는 스승의 권유로 학문의 완성을 위해 그 당시 학문의 중심지였던 알레포와 다마스커스로 떠난다. 이후 방랑자 노스승 샴스 우딘 타브리즈를 만나며, 이것이 루미에게 정신적인 혁명이 일어나게 하여 가르침과 설교를 그만두게 된다. 이로 인해 콘야의 사람들이 실망하며 루미의 문하생들이 반발한다. 노스승은 루미의 문하생들에게 의해 추방당하고 루미는 자신의 아들이 노스승을 따르도록 한다. 콘야에 다시 돌아온 샴스는 1247년까지 루미와 함께 지내다가 콘야의 한 그룹에 의해 살해당한다. 이후 루미는 설교와 가르침에서 손을 떼고 자아의 정체를 탐구하는 정신세계에 빠져든다. 그 기간에 그와의 관계를 유지하던 지인의 권유와 격려로 마쓰나비를 짓기 시작한다. 루미가 신비주의의 최고 시인으로 평가되는 것은 불후의 명저 『정신적인 마쓰나비(시)』라는 신비주의적인 서사시 때문이다. 61년부터 죽기 전까지 썼으며 전체 6권 2만 6천구로 되어 있고, 어떤 사람은 이것을 '페르시아어의 코란'이라고도 한다. 이외에도 노스승과의 교류를 통하여 영감을 받아 44년부터 61년까지 열정적인 신비주의 서정시를 썼는데, 『샴스 선집』이라고 알려졌으며 5만구로 되어 있다. 번역된 루미의 시 중에서 하나:
모든 것을 사랑에 걸어라
그대 진정 사람이라면
모든 것을 사랑에 걸어라.
아니거든
이 무리를 떠나거라.
반쪽 마음 가지고는 어전에 들지 못한다.
신을 찾겠다고 나선 몸이
언제까지 지저분한 주막에 머물러
그렇게 노닥거리고 있을 참인가?
(메블라나 첼라래딘 루미)
* 관광 상품화 된 춤
"세마", 수피댄스라고도 하며, 메블라나 신비주의의 수행 방법 중의 하나이다. 하얀 치마를 입은 사람이 나와 빙글빙글 돌기만 하는 단순한 춤이지만, 시작할 때의 검은 옷과 모자는 무덤과 묘비를 의미하여, 흰 옷을 죽음을 통한 새로운 생명을 뜻한단다. 보통은 30-40분 정도를 빙글빙글 돌지만 어떤 경우에는 몇 시간 몇 일을 돌기도 한다. '세마'와 터키의 전통 혼례 그리고 '발리'댄스를 혼합하여 만든 관광 상품.
<전통 혼례>
<밸리 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