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수상하고 난 다음, 그의 책을 읽어보려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도서 주문이나 도서관 대여를 통해, 어렵사리 그의 책을 구해 읽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합니다. "책이 어렵다고". 그리고 고개를 갸우뚱 합니다. 그렇지만, 왜 어려운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한강 소설 읽기의 어려움”입니다.
첫째, 모든 책은 어렵습니다. 책읽기는 나와 다른 사람이 나에게 들어오도록 나를 열어놓는 행위입니다. 다른 것, 다른 사람, 다른 표현방식을 받아들이기 부담스러운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책읽기는 이 ‘다름’을 나의 것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입니다. 나에게 전혀 부담을 주지 않는 책을 다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둘째, 계속해서 독서를 하지 않았다면 어려울 수 밖에 없습니다. 책읽기에도 ‘힘’이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독해력이라고 하기 보다, ’책력‘이라고 부릅니다. 체력, 국력, 근력, 회복력, 국방력 등이라고 하듯이. 이 ’힘‘은 하루 아침에 길러지지 않습니다. 꾸준한 노력과 훈련을 통해 자연스레 얻어집니다. 기본 체력이 약한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백 리 넘는 길(마라톤 42.195킬로미터)을 달릴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쉬운 책부터 차근차근 읽으면서, ’책력‘을 길러야 합니다.
셋째, 소설에 대한 선입견입니다. 소설은 누구나 재미있게 읽습니다. 이야기를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요새 소설 쓰는 사람들은 옛날처럼 이야기 중심으로 소설을 쓰지 않는 것 같습니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 읽었던 소설에서 느꼈던 그런 ‘재미’만을 바라고 읽고 소설이기 때문에 술술 읽힐거라 생각한다면, 현대 작가들이 쓴 소설을 읽어내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넷째, 생각하는 힘이 딸리기 때문입니다. 주입식 교육 위주로 공부했던 사람들은 자기 주체적으로 생각하는 힘이 약합니다. 그래서 어떤 주제에 대해 이야기로 풀어낸 소설을 읽기 위해서는 자기 나름으로 생각해야 하는데, 생각하며 읽는 훈련이 안되어 있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다섯째, 소설은 통합적입니다. 저자 자기만의 인생관과 세계관을 펼쳐나가는 공간입니다. 현대인은 전문화되어 있고, 세분화 되어 있는 환경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런 생활속에서 얻은 정보와 지식을 통합하여, 자기의 인생관과 세계관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것 또한 쉽지 않습니다. 현대 소설 읽기의 어려움입니다.
여섯째, 인내력의 부족입니다. 백 페이지가 넘는 책을 읽기 위해서는 인내력이 요구됩니다. 그것이 아무리 재미있다고 하더라도. 현대인은 기다릴 수 없습니다. 즉시 원하는 것이 나오지 않으면, 다른 것으로 넘어갑니다. 인터넷, SNS, 유튜브를 어떤 방식으로 대하고 있는가 되돌아 보면, 우리가 얼마나 즉흥적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라는 말을 기억하면 좋습니다.
일곱째, 이것은 아주아주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한강 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저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떠 올립니다. <고백록>은 성인이 자신의 구체적인 삶에 대해 성찰하고 사유하고 기도한 것을 쓴 책입니다. 외적인 일과 사건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그것이 자신의 내면에서 어떻게 기억되어 있고,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가에 촛점이 맟춰져 있습니다. 그래서 저자 자신은 무엇을 쓰고자 하는지 또렷하게 알고 있지만, 독자에게는 저자의 내면에서 일어난 이것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한강과 아우구스티누스 글쓰기에서 내적인 것을 시의 형식과 기도의 형식으로 표현한, 유사점을 자주 봅니다.
그러면, 한강 저자 개인의 내적인 것에 관한 기술인데, 그것이 소설이라하더라도 ‘노벨 문학상’까지나 수여 할 필요가 있나라는 질문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그가 다루고 있는 것이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지만, 그 개인적인 것을 인간이 지니고 있는 보편적인 것으로 끌어올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쌀 한톨에서 우주’를 보는 것이라고나 할까요.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생활에서 밀려난 책읽기가 잠깐이라도 삶의 한 가운데로 들어오게 되기를 바랍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나의 생각처럼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만의 생각을 할 수 있게 해 주면 좋겠습니다. 심심풀이 책읽기가 자신을 형성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음을 알게 되길 바랍니다. 인터넷의 정보를 복사하여 퍼 나르고 공유하는 것을 ‘생산’으로 착각하지 않고,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나의 생각을 직접 써보는 것임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