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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牛島)에서
2005년 2월 6일
섬에 살고 있지만 섬이 그리울 때가 있다. 섬이 그리운 것은 그곳에 가면 일상의 때를 씻어 버릴 수 있는 신선한 무엇인가가 있으리라는 기대감과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채 뛰다시피 생활하고 있는 삶으로부터 도피하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이런 것들이 아니라면 자기의 꿈이 온전히 실현되는 환상의 섬을 그리며 그곳을 그리워 할 수도 있는 것 같고.
지난 월요일, 성산포에서 배를 타면 10분 거리에 있는 우도(牛島)에 갔다. 3시간 정도 걸어 섬을 한바퀴 돌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겨울이 가기 전에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겨울 바닷바람을 맞으며 우도봉에 섰을 때, 나는 눈에 덮힌 한라산과 올망졸망한 오름들을 호령하며 검푸른 바다 한가운데 우뚝 서있는 나를 볼 수가 있었다.
우도봉에서 바라보았던 수채화같은 부드러운 파도가 얼마나 큰 파도였는지 바다를 따라 난 길을 걸으면서 알 수 있었다. 서 있기에도 힘든 바람을 뚫고 가면서 ‘내가 왜 이런 고생을 하고 있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인어공주” 촬영 장소>라고 쓰인 작은 집이 나타났다. 내가 알고 있는 <인어공주>는 전도연이 1인 2역을 했고 영화의 대부분이 우도에서 촬영되었으며 해녀들의 삶과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는 것뿐이었다. 걸으면서 그 영화에서 해녀들의 모습이 어떻게 그려졌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제주의 해녀들 특히 우리 본당의 해녀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나는 해녀들이 좋으며 착각일지 모르지만 그들을 사랑한다. 그들에게서 억척스러움과 따스함, 절대로 굽혀지지 않을 것 같은 강함과 약한 바람에도 휘어지지만 금방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유연함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쁘기 때문이다. 성숙한 사람의 특성 중의 하나가 공존할 수 없을 것 같은 것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해녀들은 성숙한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이 지니고 있는 이런 품성은 어떻게 길러진 것일까? 히브리서에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아들이셨지만 고난을 겪음으로써 순종하는 것을 배우셨습니다”(5, 8)라는 말씀이 있다. 예수께서 당신의 고난 안에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찾을 수 있었고 그것에 순응하는 것을 배우셨다면 해녀들은 바다를 통해 삶에 순응하는 것을 배웠을 것이다. 해녀들에게 있어 바다는 그들을 먹여 살리는 생명의 원천이면서도 그들을 언제 죽음으로 이끌지 알 수 없는 죽음의 장소일 것이다. 그들이 거친 파도 속으로 뛰어들고 시커먼 바다 속으로 잠수하고 다시 ‘숨비소리’를 내며 솟구칠 때 바다가 그들에게 스승이 되었을 것이다. 그들이 바다로부터 삶이 무엇이고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배우지 않으면 거친 세상 안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우도를 한 바퀴 돌아 다시 우도항이 보이면서 바람을 등지게 되었다. 바람이 너무 센 탓인가 아니면 물때가 아니어서인지 물질하는 해녀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 집에서 혹은 밭에서 일을 하면서 다시 바다로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을 바다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주시고 축복해 주시라고 성호경을 그으며 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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