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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것과 새 것 사이에서원고글/바 롯 2009. 10. 15. 22:02
옛 것과 새 것 사이에서
2006년 10월 29일
2002년에 상영되었던 영화 <집으로>는 일곱 살 먹은 상우가 산골에서 혼자 살고 있는 일흔일곱 살의 외할머니 집에 머물면서 일어나는 일들이 주축을 이룬다고 한다. 도시의 편리함에 길들여진 상우와 말도 못하고 글도 모르는 외할머니가 함께 살고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불편함과 오해가 생긴다.
후라이드 치킨이 먹고 싶었던 상우는 어느 날, 할머니에게 후라이드 치킨이 무엇인지 손짓발짓으로 설명했다. 상우는 자신의 설명이 성공했다고 생각했는데 할머니가 준비한 것은 백숙이었다. 자기 앞에 놓인 백숙을 보며 ‘왜, 치킨을 물속에 빠뜨렸느냐’고 울고불고 떼를 쓰고, 그런 상우를 보며 할머니는 무엇인가 잘못한 것 같은 자기자신을 탓하며 상우에게 미안해 할 뿐이었다.
이와 비슷한 일들이 영화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가끔 일어난다. 얼마 전에 어머니(86세)께서 이곳에 오시어 한 주간 정도 머무셨다. 우리는 함께 아침 식사를 준비했는데 나는 전자렌지를 자주 사용했었다. 몇 분 안에 음식이 뜨끈뜨끈하게 덥혀지는 이 전자렌지가 신기하셨던지 어머니께서는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약간만 덥혀진 음식을 더 뜨겁게 하기 위해 다시 덥히면서 시간이 되어 꺼내려는데 어머니께서 그대로 두라고 하셨다. 어머니 의향은 ‘뜸’이 들도록 조금 더 기다렸으면 하는 것이었다. 전자렌지로 뜸을 들였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었기에 그대로 꺼냈지만.
우리는 ‘옛것’과 ‘새것’ 사이에서 살고 있다. 옛것(과거)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새것(미래)을 향해 발을 옮기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이것은 우리의 삶 안에 긴장과 갈등이 있을 수 밖에 없으며 이것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결코 참된 ‘새것’에 도달 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하여야만 한다”(<데미안>)라는 이것을 잘 말해 주고 있다. ‘옛것’과 ‘새것’ 사이에서 어떻게 평화롭게 살 것인가? ‘옛것’과 ‘새것’의 완성을 어떻게 이루어 낼 수 있을까? 이것은 상처로 얼룩진 역사와 더불어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하는 우리들 모두가 고민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의 제자가 된 모든 율법 학자는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마태 13, 52)라고 말씀하셨다. 주님은 옛것과 새것의 주인이시다. 주님의 오심으로 옛것이 완성되었지만 주님의 나라 또한 옛것의 연장선에서 완성되었다. 따라서 주님의 제자인 우리들은 ‘옛것’에 대한 적절한 평가 없이 ‘새것’만을 추구해서도 안 되며 정형화되고 고착되어 버린 줄도 모르고 ‘옛것’만을 고집해서도 안 될 것이다. 더불어 옛것과 새것으로 인한 긴장과 갈등을 견디어 낼 수 있는 느긋한 마음과 우리의 삶을 시간의 흐름과 역사의 거대한 흐름에서 보려는 마음이 필요한 것이다. 상우가 후라이드 치킨 뿐만 아니라 백숙을 알아 가고 어머니가 전자렌지에 익숙해지기 까지는 시간이 걸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