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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야-어찌 나만말 씀/생명의 말씀 2022. 2. 1. 12:46
지난 몇일 동안 평일미사에서 다윗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다윗 자신에 관한 것은 물론이고, 그와 관련된 사람들의 말과 행동 중에서 묵상하고 마음에 새기고 살아야 할 내용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서 다윗과 바쎄바와 우리야에 관한 이야기(2사무 11장)가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다윗은 주변 민족들과 전쟁하면서 승승장구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발걸음을 붙잡을 것이 없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에게는 요압이라는 뛰어난 장군이 있었고 주변 국가에서 불러들인 용맹한 용병들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얼마 전에 시작한 암몬과의 전쟁터로 이들을 보내고 왕궁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요압장군이 있어 암몬 군대쯤은 쉽게 물리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왕궁 옥상을 거닐고 있었던 다윗이 목욕하고 있는 한 여인을 내려다 봅니다. 그 여인의 아버지는 엘리암이며 할아버지는 자기에게 봉사하고 있는 아히도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남편은 자기 군대의 용병 히타이트 사람 우리야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후 상황을 파악한 다윗은 바쎄바를 왕궁으로 불러들입니다. 바쎄바와의 관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자기의 권력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일까요?
바쎄바는 자기에게 아이가 생겼다는 것을 다윗에게 알려줍니다. 다윗은 전장에 있는 우리야를 불러들입니다. 우리야에게 요압장군의 안부와 군사들과 전선의 상황을 물었지만, 다윗은 목적은 다른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우리야에게 집으로 가서 쉬었다 가라고 말합니다. 다윗이 꼼수를 쓴 것입니다. 이런 다윗에게 우리야는 충성심으로 응답합니다. 바쎄바가 있는 자기 집으로 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다윗이 우리야에게 집에 가지 않은 이유를 묻자 우리야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계약 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초막에 머무르고, 제 상관 요압 장군과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의 신하들이 땅바닥에서 야영하고 있는데, 제가 어찌 집에 가서 아내와 함께 머물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야는 다음 날에도 다윗이 베푼 호의를 사양하고 왕궁에 있는 부하들과 함께 머물다가 다시 전장으로 나갑니다.
제 마음속에 와 닿았던 것은 '전쟁터에 생사를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어찌 나만 편하게 지낼 수 있겠습니까?'라는 우리야의 마음이었습니다. 자기 자신만 생각할 때 다윗 왕이 베푼 호의를 거절할 이유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다윗 왕에 대한 겉꾸민 충성심으로 호의를 사양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을 생각할 때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야가 자기에게 주어진 호의를 기꺼이 희생할 수 있었던 것은 '어찌 나만'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우리야는 자기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자기가 요압 장군과 군사들과 깊이 연결되어 있고, 그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이 바로 자신의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관계중심의 사회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과 얽혀 있음을 강조했던 사회였습니니다. 그래서 '나'는 없고 '우리'만 있었다고 말들합니다. '우리'를 위해서는 '나들'은 얼마든지 희생해도 괜찮다는 분위기에서 살았습니다. '우리'가 힘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전용물이었던 고통스러웠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나'를 위해서는 '우리'를 구성하게 될 '너'는 아무래도 괜찮다는 분위기로 되어가고 있습니다. '너'는 내가 경쟁해야 할 상대일 뿐이고, 건너뛰어야 할 사람이며, 심지어 걸림돌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나'만 있고 '나'와 다른 '너'가 없으며 이런 '너들'로 이루어지는 '우리'가 없거나 희미해져 가고 있습니니다. 이런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야의 태도가 마음속에 와 닿았던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고통받고 신음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찌 자기에게 주어진 것을 다 누리고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이 나의 노력으로 얻은 것이고 정당하게 주어진 것이라고 하더라도, 어찌 나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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