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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다말 씀/생명의 말씀 2021. 12. 5. 22:26
주로 설교를 사명으로 하는 성직자로 이루어져 있는 수도회의 회원들 또는 적어도 성직자가 될 사람들이 성경과 신학을 연구하지 않는다면 그 수도회는 수도회 자체의 사명을 도저히 수행할 수 없음은 보나벤뚜라에 있어서자 우리에게 있어서 분명한 사실이다... 성 보나벤뚜라는 하느님과의 일치를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성 프란치스코의 정신에 전적으로 충실했다. 그러나 이 일치는 하느님이나 하느님에 관한 중요한 일의 지식없이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과 적어도 이러한 지식은 하느님과의 일치에 있어서 방해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영혼을 더욱 밀접하게 일치시키리라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결국 그가 권장했고 스스로 수행했던 연구는 성경과 신학의 연구였으며, 하느님과의 아무런 관계가 없는 그러한 문제의 연구는 아니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과의 인격적인 사귐을 위한 여지와 그리스도를 위한 여지가 없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적인 철학을 그가 싫어하고 신용하지 않았던 이유들 중에 하나였다. (<중세철학사>, F. 코플스톤/박영도, 서광사, 1989, 318)
☞ 신학교 다닐 때 읽었어야 했던 책을 읽고 있다. 읽으면서 이해는 되지만 읽었던 내용을 기억하거나 설명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다. 도대체 지금까지 무엇을 하면서 지냈는지 답답하다. 지금까지 매일 먹고 있는 밥으로 지금까지 살고 있는 것처럼, 지금까지 읽고 생각했던 것을 바탕으로 하느님께 조금이라도 갈 수 있었다면 좋겠다. 그 어떤 분야의 책이나 주제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하느님께로 나갈 수 있게 해야 하는데,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하는 말이다. 육과 감각을 통한 것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고,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이것의 반에 반도 안 될 것 같다. 더구나 하느님께 뿌리를 두고 있는 영혼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아무 것도 모르고 있는 상황이다. 영과 관련된 일이기 때문에 하느님으로부터 비추임이 필요하기 때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