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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과 에와생활글/생활 속에서 2020. 11. 23. 21:01
어디를 돌아봐도 자기와 같은 존재가 보이지 않는다. 어디에서 어떻게 이곳에 와 있는지 모르고 있다. 자기와 주변의 사물과 어떻게 다른지 알 수가 없다. 소통하고 나눌 수 있는 존재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흐르는 시간이 자기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다. 시간이라는 말을 언제부터 사용했지. 방황인지 방랑인지, 탐색인지 모험이지 주변을 돌아다닐 뿐이다. 자기와 같은 존재를 찾고 헤매는 것인지도 모른다. 살아있지만 죽은 것과 같은 생활이다. 살아있음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돌과 자갈과 물과 구름과 나무와 풀처럼 있었다가 스러져가는 것이 두렵지 않다. 언제부터 자의식이라는 것이 나타났는지 모른다. 시간의 흐름으로 말하고 있지만 이것이 일순간에 일어난 일인지도 모른다. 최초의 인간, 아담. 아담은 멀고 먼 과거에 살았던 사람이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도 그래도 존재하고 있다. 똑같은 형태는 아니라 할지라도 근본적인 면에 있어서는 예나 지금이나 같다. 아담의 유전자를 받아서 이기도 하지만, 인간 존재가 그렇기 때문이다. 아담의 짝으로 출현한 에와. 아담의 갈비에서 나온 부수적인 존재라기 보다는 아담의 그림자로서 나타날 수 밖에 없었던 존재이다. 최초의 여성. 아담의 그의 그림자라고 할 수도 있다. 아담과 에와가 함께 있을 때 온전한 인간이 된다. 생물학적인 면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생물학적으로는 뚜렷하게 구별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뜬금없이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겠다고 생각했다. 수없이 이야기되었겠지만, 손을 통해 쓰여지는 대로 써보는 것도 괜찮으리라는 생각. 이와 같은 방법을 통해 마음속에 있는 생각들이 씻겨지고 벗겨진 다음에 무엇이 남게 될 것인가, 자못 궁금하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속에 어떤 생각들이 있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나름 찾아낸 방법이다. 자기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이야기할 수 없을 때라도, 다른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자기 생각을 더 잘 드러낼 수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책에서 읽었던 것을 마중물 삼아 자기 생각을 적는 것과 같은 이치다. 성경의 인물에 대한 연구를 하기 위햇해서도 아니고 묵상을 위해서도 아니다. 다만 쓰면서 생각을 덜어내기 위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