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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시간생활글/생활 속에서 2020. 11. 20. 22:11
다시 일상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일주일에 한 번 늦잠자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조금 일찍 일어났다. 새벽아닌 아침에 미사를 봉헌하기 위해서. 먹는 것에는 정성과 사랑이 담겨 있어야 한다. 수녀님들이 준비한 식사 모두가 맛있지만, 특히 아침 식사가 좋다. 가볍게 먹을 수 있지만 영양도 고려하고 색의 조화까지 신경을 쓰는 듯 하다. 9시 20분 버스를 타기로 했다. 8시 무렵에 시내 나가는 자동차가 있었지만, 사양했다. 오랜만에 시골 버스를 타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버스 터미널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침묵 모드. 마스크로 가려진 얼굴 표정을 알 수 없다. 테레비에서 방영되는 것을 보고 있지만 크게 신경쓰지도 집중하는 것도 아님을 알고 있다. 기괴하다는 느낌이다. 살아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죽어있는 듯.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의 느끼는 자유로움이 있다. 아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얼굴 대부분이 가려져 있기 때문에 모르는채 해도 된다. 자기 속으로 깊게 빠져들어가 있는 사람들. 다른 사람들에게 내어줄 자리가 없다. 철저하게 자기로서 살고 있다. 혼자 살고 있다라는 말이다.
서울 가는 길목에는 여유를 찾아볼 수 있는 공간이 없다. 공장과 공장과 공장들, 공장 형태의 집들 밖에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어디에서 살지. 말 그대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달리는 자동차. 보는 것 자체로 숨이 막힌다. 언제 숨을 쉬는 거지. 좁은 땅, 서로 비비며 살면서 다른 사람에 대한 너그러움을 갖기 불가능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 코로나 때문에 말하기를 절제하라고 해서 인지, 말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엄청 바뻐보인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인데, 나와 관련없는 것처럼 보인다. 함께 섞일 수 없다는 소외감과 이질감이 공존한다. 일부러 세 시간 뒤에 차표를 끊은 목적이 무엇이었던가. 터미널과 주변 건물을 리모델링 하고 있어 방향감각을 잊어 버렸다. 가장 만만한게 반디 앤 루니스. 바깥의 번잡스러움과 아주 상이한 곳이다. 그렇게 번잡스런 곳에 그렇게 조용한 곳이 있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는다. 어차피 시간은 죽여야 하는 것. 적당한 곳에 앉아 골라온 책을 읽는다. 제법 재미있다. 이럴 때마다, 부러움.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지도 않았으면서, 치열하게 살려고 방향을 설정하지도 않았고, 뭔가 좀 해보려고 하면서 너무 늦었다는 자괴감에 빠진다.
금요일부터 주말이 시작되는가. 우등도 아닌 일반 버스인데, 빈자리가 없다. 모두 동해안으로 가는 것은 아니겠지만 상당수가 동해의 툭트인 시원함을 그리며 가고 있으리라. 아침 9시부터 오후 다섯 시까지 했던 말을 그대로 기억할 수 있다. 시내버스 요금 얼마예요. 적립금 얼마예요. 카푸치노 한 잔 주세요. 세상에서 말없이 살 수 있고, 말 하지 않고도 얼마나 살 수 있을지. 동해의 서늘함과 더불어 숨이 쉬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