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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을 보내면서원고글/영혼의 동반 2010. 5. 20. 08:06
사순절을 보내면서
세상을 편하고 쉽게 살 수 없을까? 세상을 양분하여 흑백으로 보면 된다. 이것 아니면 저것이고. 이 사람은 나쁜 사람이며 저 사람은 좋은 사람이고. 이것은 몸에 좋으니 먹어도 되고, 저것은 해로우니 피하고. 화려했던 과거 속에서 살거나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 잡혀 있고. 쓰라린 과거 속에서만 살거나, 미래의 환상과 꿈속에서 살고. 먹고 사는 현실에 목을 매거나, 이상을 향해 허우적 거리고.
세상을 이렇게 바라보면 속 편하겠지만, 어린 아이들의 세상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책상 위에 칼로 선을 그은 다음 내 쪽으로 넘어온 친구의 노트를 칼로 잘라 버린다. 친구 또한 내 노트를 칼로 잘라 버리고. 그러나 커서는 이것이 얼마나 웃기는 일인지 알고 있다. 어른들은 흑백 논리로만 세상을 살 수 없음을 알고 있다. 내 속에 좋은 사람이 있고, 내 속에 나쁜 사람이 있으며, 내 속에 이상한 사람이 있다. 먹고 싶지만 먹지 못하는 것이 있고, 먹기 싫지만 억지로라도 먹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세상. 화려한 과거와 미래의 불확실함 사이에 끼여 신음하고 있고. 물은 불을 꺼버리지만, 불은 물을 마르게 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함께 하고, 모순되는 것들이 함께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초나라에 어떤 사람이 있었다. 자신이 만든 창을 가지고 뚫지 못하는 방패가 세상에 없었다. 이 강한 창으로 세상의 어떤 것도 무찌를 수 있다고 떠들어 댔다. 이런 창을 만들어 갖고 있는 자기가 자랑스러웠다. 바로 이 사람이 만든 방패가 있었다. 이 방패를 뚫을 수 있는 창이 세상에 없었다. 이 방패로 세상의 모든 어려움을 막을 수 있다고, 그래서 얼마든지 편하게 살 수 있다고 떠들어 댔다. 이런 방패를 만들고 그 방패를 갖고 있는 자기가 대단한 사람으로 보였다. 옆에 있는 사람이 궁금해서 물었다. 당신이 만든 창으로 당신이 만든 방패를 찌를 때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극과 극이 만나면 불꽃이 튄다. 창으로 방패를 찌를 때 불꽃이 튀고, 방패가 창을 만날 때 불꽃이 튄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면 불꽃이 튀고, 우리와 너희가 만나면 불꽃이 넘실거린다. 나의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곳에서 불꽃이 일며, 현실과 이상이 만나는 곳에서 불꽃이 튄다.
사람의 마음, 우리의 삶은 극과 극이 만나는 곳이다. 불꽃이 일어나고 스러지는 싸움터이다. 이 불꽃이 생명의 원천이며, 이 불꽃으로 세상이 창조되었다는 것, 신비이다. 사람은 이 불꽃을 안고 세상에서 태어난다. 괴롭고 고통스러울 수 밖에. 이 불꽃에 대해 많은 사람이 많은 말을 한다. 영원한 것, 참된 생명, 어둠, 빛, 무, 영원의 불꽃 등. 말로 어떻게 표현하던 그것이 우리 몸속에 그리고 영혼 속에 있다. 있지만 잡히지 않고, 없지만 우리와 세상을 있게 한다. 이 불꽃이 있어 우리가 괴로우며 이 불꽃 때문에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 고통을 딛고 그 너머로 나갈 수 있다.
사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생명과 죽음이 싸우는 시간이며, 빛과 어둠이 뒤섞인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주님의 자비와 죄의 용서 사이에 서 있는 시간입니다. 마음속의 팽팽한 긴장감으로 깨어 있어야 하는 시간입니다. 사람들이 잠들어 있을 밤에 어떤 사람이 깨어 있다는 것은 그에게 아주 중요한 일이 일어나려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의 길을 가시기 전날 밤, 겟세마니 동산에서 공포와 번민에 싸여 기도하신 것을 기억하면 될 것입니다. 그 때 제자들은 모두 잠들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시몬아 잠들어 있느냐?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단 말이냐? 너희는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여라”(마르 14, 3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서는 어떤 사람이 하느님과 관계없이 살고 있느냐 아니면 하느님을 알아 경배하며 살고 있느냐를, 그가 잠이 들어 있느냐 아니면 잠이 깨어 있느냐로 구분합니다.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로 고백하느냐 아니면 능력을 지닌 사람으로만 생각하느냐의 차이를 말 할 때에도 잠과 관련을 짓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라자로에 대해서 “우리 친구 라자로가 잠들었다. 내가 가서 그를 깨우겠다”(요한 11, 11)라는 말씀을 통해서 이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잠으로부터 깨어난다는 것은 예수님에 의해서 새롭게 태어난다는 의미입니다. 내 마음에서 스러진 불씨가 살아나게 하는 것입니다. 깨어있다는 것은 내가 알고 있고 믿고 있는 분이 내가 만들어낸 하느님일 수도 있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인정하고 겸손하게 산다는 말입니다. 내가 기다리는 분이 예상하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들이닥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 경계하며 사는 것입니다.
사순절을 보내고 있는 우리는 겟세마니와 골고타산의 예수님과 부활동산의 예수님 사이에 서 있어야 합니다. 함께 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것과 더불어 살고, 경계선 위에 있는 사람은 긴장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그를 깨어있게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나침반의 바늘이 바르르 떨면서 북극을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표현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과 가르침 앞에 나침반의 바늘처럼 바르르 떨고 있지 않을 때 우리는 잠에 떨어진 것입니다. 살아있지 않고 죽은 신앙인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위한 생명이 되지 못하고, 자기만족만을 추구하는 것으로 되어 버립니다. 신앙 공동체에서 행하는 모든 것들은 끼리끼리의 잔치로 전락되어 버립니다.
사순절을 보내면서 프란츠 카프카의 다음과 같은 말을 기억해도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밤에 흠뻑 잠겨. 이따금 골똘히 생각하기 위하여 고개를 떨구듯 밤에 흠뻑 잠겨 있음. 사방에는 사람들이 잠자고 있다... 이마는 팔에 박고 얼굴은 땅바닥을 향한 채 조용히 숨쉬며, 그런데 네가 깨어 있다. 파수꾼 중 한 사람이다, 왜 너는 깨어 있는가? 한 사람은 깨어 있어야 한다고 한다. 한 사람은 여기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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