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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은 깨어 있어야 한다원고글/영혼의 동반 2010. 2. 16. 16:59
한 사람은 깨어 있어야 한다
“밤에 흠뻑 잠겨. 이따금 골똘히 생각하기 위하여 고개를 떨구듯 밤에 흠뻑 잠겨 있음. 사방에는 사람들이 잠자고 있다... 이마는 팔에 박고 얼굴은 땅바닥을 향한 채 조용히 숨쉬며, 그런데 네가 깨어 있다. 파수꾼 중 한 사람이다, 왜 너는 깨어 있는가? 한 사람은 깨어 있어야 한다고 한다. 한 사람은 여기 있어야 한다.” (프란츠 카프카)
사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의 핵심이요 출발점이며 귀결점인 예수님과 함께 어둔 밤을 지내는 시간이며, 그분 부활의 영광을 깨어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들어 있을 밤에 어떤 사람이 깨어 있다는 것은 그에게 아주 중요한 일이 일어나려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을 통해서 이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의 길을 가시기 전날 밤, 겟세마니 동산에서 공포와 번민에 싸여 기도하고 계실 때 제자들은 모두 잠들어 있었습니다. 이것을 보시고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시몬아 잠들어 있느냐?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단 말이냐? 너희는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여라”(마르 14, 3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잠에서 깨어나는 시간
성경에서는 어떤 사람이 하느님과 관계없이 살고 있느냐 아니면 하느님을 알아 경배하며 살고 있느냐를, 그가 잠이 들어 있느냐 아니면 잠이 깨어 있느냐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28장에 야곱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사악의 아들 야곱은 아버지와 형 에사오를 속여 하느님의 축복을 가로챘고, 에사오는 원한에 싸여 야곱을 죽이려 작정했습니다. 야곱은 이런 형을 피해 삼촌이 살고 있는 하란으로 도망가도 있었습니다. 어떤 곳에 이르렀을 때 해가 지자 그곳에서 하룻밤을 묵고 있을 때 꿈을 꾸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자신의 조상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사악에게 약속하신 땅과 자손에 관한 것을 보증 받는 꿈이었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야곱은 “진정 주님께서 이곳에 계시는데도 나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구나”(창세 28, 16)고 말하며 그곳에 하느님의 집을 상징하는 기념 기둥을 세우고 평생 하느님을 모시며 살겠다고 서원했습니다.
똑같은 야곱이지만 잠들기 전의 야곱과 잠에서 깨어난 야곱은 전혀 다른 사람입니다. 잠들기 전의 야곱이 죄 중에 있었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미래에 대한 근심 걱정으로 가득했었다면, 잠에서 깨어난 야곱은 자기가 지은 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축복하신 하느님을 알게 된 것입니다. 더 나아가 하느님께서 자기가 누워있었던 바로 그 자리에 계셨음을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하느님의 축복과 자비 안에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였고 이로부터 새로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사순절은 날카로운 양심으로 자신의 삶을 살펴보고 주님을 향해 돌아서는 시간입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오지 않고 죄인을 부르러 왔다”라고 말씀을 기억하면 자신의 어둠으로부터 깨어나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는 시간입니다.
주님을 깨우면서
우리는 매일의 삶속에서 여러 가지 많은 일들을 체험하며 살고 있습니다. 교회는 이것을 “모든 사람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번뇌는 바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도들의 기쁨과 희망이며 슬픔과 번뇌”(사목헌장 1항)라고 표현합니다. 우리가 겪는 모든 일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그분께 봉헌해야 할 것이고 그분과의 관계 안에서 이해되고 해결되어야 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어느 날, 예수님과 제자들이 호수를 건너가고 있었고 이때 예수님께서는 고물을 베게삼아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그때에 거센 돌풍이 불어 배가 거의 뒤집히게 되었습니다. 이때 제자들은 예수님께로 갔고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잠에서 일어난 예수님께서 바다를 향하여 “고요하고 잠잠해져라”(마르 4, 39)고 명령하시니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졌습니다.
살아가면서 가끔 우리가 예상하지 않았던 시련과 고통을 만날 때가 있고, 그렇게 크게 잘못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감당할 수 없는 역경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대부분의 우리들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흔들리거나 그분께서 우리를 버리셨다고 원망합니다. 그분이 계시지 않은 것처럼 생활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분께서는 우린가 어떤 처지에 있던 우리를 버리지 않고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골방 한쪽에 계시고, 성당 어두운 곳에 계시며, 우리가 만나기를 꺼려하는 사람안에 계시며, 아주 특별히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에 계십니다. 사순절은 이처럼 숨어계신 하느님을 찾는 시간이며, 자주 성당에 가서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잠자고 계시는 그분을 흔들어 깨우는 시간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삶의 주도권을 주님께 넘겨 드리며 사는 시간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며
우리가 깨어 있고 잠들어 있는 주님을 흔들어 깨우는 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위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는 것이 예수님께서 돌아가실 때까지 다른 사람을 위해 사셨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말이고 그렇게 살려고 노력한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시대에나 고통받고 소외된 사람들이 있었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는 다른 어떤 때보다 이런 사람들이 많은 듯합니다. 빌린 돈을 갚지 못해 몇 년을 숨어 살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이 있고, ‘시간 강사 생활이 너무 자신의 삶을 포기한 젊은이가 있으며, ‘때리는 아버지가 무서워서’ 어린이가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하고, 카드빚에 몰린 엄마가 자녀들과 함께 죽었다라는 등의 소식을 자주 듣습니다.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런 놀라운 사건이나 고통을 보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여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당신을 배반할 베드로를 보시고 “네가 돌아오거든 네 형제들의 힘을 북돋아 주어라”(루카 22, 32)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이 말씀에 따라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 수 있고 도울 수 있으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밤에 잠이 오지 않는 것은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나의 기도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자기를 위해 밤을 세워가며 기도하고 있다는 것처럼 우리에게 힘이 되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순절은 이처럼 다른 사람을 위해 깨어 기도하는 시간이고, 겟세마니 동산의 예수님과 함께 밤을 지새우는 때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이 깨어 있음이 다른 사람을 위한 희생과 보속이라는 생활로 드러나야만 하는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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