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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Q씨. 참으로 쓸쓸하고 막막한 부름이군요. 나는 도무지 당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합니다. 내 그림자인지도 모르겠고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방의 벽인지도 모르겠고 저 머나먼 곳, 밤하늘에 있는 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찬가지로 당신 역시 나를 알 턱이 있나요. (<Q씨에게>, 박경리, 다산책방, 2025, 12)
*** 작가 박경리가 중국 작가 노신의 작품 <아큐정전>의 아Quei라는 사람에게서 Q를 훔쳐와서 쓴 글이다. 우리에게는 이름 지을 수 없고 이름으로 부를 수 없는 것이 “있다”. 더 나아가 그것이 자기와 더불어 살고 있는 것처럼 대하고, 심지어 나와 대화할 수 있는 인격체로 대하기도 한다. 어디에나 있지만, 어떻게 있음을 증명할 수 없는 Q에 대해 사람들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설명을 한다. 박경리가 Q씨라고 부르며,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쓰고 싶은 글을 쓰는 상대가 나에게 있는가. 있다면 그에게 어떤 이름을 지어주고 싶은가. 작가적인 상상력이 부족하여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문학하는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고 상상하고 표현할 수 있다. 그런데 신학하는 사람은 항상 어떤 틀과 형식(도그마)안에서만 이야기해야 하는 한계와 답답함이 있따. 언어를 기반으로 이루어진 도그마의 한계를 간파한 사람들이 신비주의에로 눈을 돌릴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