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등장인물을 창조할 유일한 방법은 관찰입니다. 다른 길을 없다고 봐요. 작가가 눈여겨본 사람들을 합산하는 과정과도 같습니다. 소설가들의 내면에는 그들로 하여금 상황을 눈여겨보며 늘 축적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설가는 사소하고 하찮은 세부 요소를 기억하는데, 그런 세부 요소 중 일부는 거의 끔찍할 정도지만 실상을 보여주기에는 아주 효과적입니다. (<쓰기라는 오만한 세계>(314) 중에서 윌리엄 트레버)
*** 갑자기 상가집에 갔다 와야 했다. 자동차로 오가는데 걸린 시간과 휴식 시간까지 포함하면 8시간 정도를 함께 있었다. 운전석과 그 옆 자리에 않아 있는 사람이 쉬지 않고 말을 한다. 뒷 좌석에 앉아 있는 한 사람은 이어폰으로 뭔가 듣고 있고, 한 사람은 차창 밖을 보고 있으며 나는 마스크에 안대를 하고 있다. 두 사람이 하는 이야기 중에 새로운 이야기는 하나도 없다. 운전자가 졸지 않게 말을 거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했던 일과 만났던 사람과 지금까지 방문했던 도시와 나라에 관한 이야기다. 모두 지금까지 자동차안에서든 식탁에서든 수없이 들었던 이야기들이다. 해야 할 일이 있어 조용히 생각하고 싶은데, 그런 여유를 주지 않는다. 귀가 따갑다. 집으로 돌아와 차에서 내래며 하는 말, “아, 여덟 시간 함께 한 좋은 여행이었다.” 여덟 시간을 내리 이야기한 이런 사람을 재창조한다면 어떤 캐릭터로 등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