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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가르기
2006년 9월 10일
‘십인십색’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열 사람이면 열 사람 모두 다른 색깔을 지니고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 주변에 나와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많은 돈을 주고 옷을 샀는데 내 것과 똑같은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 있을 때 친근감보다는 반감같은 것을 느낀 적은 없었습니까? 이처럼 우리는 모든 면에서 다는 사람과 다르기를 바랍니다. 나와 다름’을 편가르기를 위한 수단으로 삼느냐 혹은 풍요로움을 위한 수단으로 삼느냐에 따라 ‘어린아이’인가 아니면 ‘어른’인가로 구분 될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께서 코린토 교회의 사람들을 ‘어린아이’라고 부를 때가 있었습니다(1코린 3, 1). 순진하고 순수하며 다른 사람들의 말을 받아들이는 좋은 의미에서가 이 단어를 쓴 것은 아니었습니다. 코린토 교회의 신자들이 ‘나는 바오로 편이다’, ‘나는 아폴로 편이다’라고 하며 시기와 싸움으로 분열되어 있다는 소식들 듣고서 한 표현이었습니다.
‘나와 다름’을 편을 가르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은 다른 것들에 대해서도 편가르기를 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관심을 가지고 집착을 하지만 ‘네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는 무시하고 적대적으로 대하는 태도를 쉽게 보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신앙’과 ‘생활’을 별개의 것으로 분리시킵니다. 성당에서의 모습과 성당 밖에서의 모습이 다른 사람이며 기도할 때의 모습과 일을 처리할 때의 모습이 전혀 다른 사람입니다.
우리들이 기도와 활동을 전혀 다른 것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예수님께서는 이 두 가지를 너무도 조화롭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일치시킨 생활을 하셨습니다. 루카 복음은 “예수님께서는 해 질 무렵에 사람들이 갖가지 질병을 앓는 이들을 있는 대로 모두 예수님께 데리고 왔다.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들을 고쳐 주셨다”(4, 40)라고 전합니다. 자신에게 데려온 사람들을 한 사람 한 사람씩 돌보아 주고 고쳐준다는 것이 무척 피곤한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날이 새자마자 일어나 외딴 곳으로 가시어’(루카 4, 42) 하느님과 일치되어 있는 시간을 갖습니다. 이런 활동과 기도의 조화, 하느님과의 일치로부터 모든 병자들을 낫게 하신 힘과 하느님 나라의 기쁜소식을 지칠 줄 모르게 전했던 열정이 나왔습니다.
우리가 ‘어린아이’처럼 편가르기를 할 때 우리가 갖고 있는 힘을 제대로 발휘할 수가 없습니다. 반면‘나와 다름’을 ‘어른’으로 의젓하게 받아들일 때 그것은 우리의 삶을 더욱 더 풍성하게 해 줄 것입니다. 다양성안에서의 일치를 위해 주님께 기도합시다. 서로 다른 것들을 조화시키고 일치시켰던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을 실천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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