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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검에 찔린 상처
2006년 6월 18일, 성체성혈 대축일
내 몸에는 크고작은 흉터가 많이 있다. 언제 생겼는지도 모르는 아주 작은 것이 있는가 하면 오른쪽 등에서 시작하여 옆구리까지 내려온 깊고 기다란 수술 자욱도 있다. 무릎에서 가끔 통증이 있는 것을 보면 얼마 전에 다친 그곳이 아직 다 낫지 않은 것 같다.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무릎의 이 상처도 언젠가는 내 몸의 또 다른 흉터로만 남게 될 것이다.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는 마음이라고 하지만 상처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만큼은 마음이 몸보다 더 실재하는 것처럼 말한다.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라는 말을 우리들이 얼마나 자주 사용하는 가를 보게 되면 이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마음의 흉터와 상처들을 꺼내어 볼 수 있게 한다면, 그것들은 몸의 것보다 많았으면 많았지 결코 적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의 몸에 흉터 하나 없이 곱게 자란 사람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몸과 마음에 한 번도 상처받아보지 않고 자란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치유된 우리 몸과 마음의 상처는 삶의 자랑스러운 흔적으로 남겠지만 치유되지 않은 상처는 가시가 되어 우리를 괴롭힌다. 이런 수많은 가시를 안고 살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의 처지에 대해 쇼펜하우어라는 철학자는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들고 있다: 몹시 추운 겨울 어느 날, 고슴도치 두 마리가 서로의 몸을 붙여서라도 몸을 따스하게 해보려 했다. 그러나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가시 때문에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그들은 서로 떨어져 그 추위를 견뎌낼 수 밖에 없었다.
고슴도치의 가시와 같은 상처를 안고 사는 우리들의 상황을 비관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우리에게 위로와 힘이 되는 것은 우리만이 그런 상처를 안고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들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하실 때 성모님께서는 ‘당신의 영혼은 칼에 찔리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들으셨고, 바오로 사도는 ‘자기 몸에 하느님께서 주신 가시’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옆구리를 창으로 찔리는’고통을 받으셨으며 주님의 이 상처는 우리들의 상처가 다 낫기 전에는 결코 아물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다.
우리들의 상처가 주님 안에서만 치유될 수 있음에 대해 예언자는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이사 53, 5)라고 말했다. 예수 성심 성월이다. ‘창검에 찔린 상처 그 크신 사랑’안에 자주, 오래 머물렀으면 한다. 그리고 그분의 상처 안에서 우리의 상처가 낫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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