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설에서는 늘 첫마디가 제일 어렵다고 합니다. 자, 이미 첫마디는 이렇게 지나갔군요. 하지만 다음 문장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187)
* 오늘날 시인들은 회의적이고 의심 많고, 특히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187)
* ‘시인’이 되기 위해서 정말 중요한 것은 도장이 찍힌 증명서가 아니라 훌륭한 시가 적힌 종이쪽지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오늘날 아무도 그 일을 하려 하지 않거나, 설사 한다 해도 극히 소수만이 종사할 따름이라는 점입니다. (189)
* 시인에게 정말로 중요하고 의미 있는 시간은 따로 있습니다. 혼자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문을 걸어 잠그고, 거추장스런 망토와 가면과 허례허식을 모두 벗어던진 채 고요한 침묵에 잠겨, 아직 채 메워지지 않은 종이를 앞에 놓고 조용히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그런 순간 말입니다. (190)
* 시인의 작업은 (영화)촬영에는 절망적일 정도로 적합하지 않습니다. (191)
* 진정한 시인이라면 자신을 향해 끊임없이 “나는 모르겠어”를 되풀이해야 합니다. 시인은 자신이 쓴 작품에 마침표를 찍는 순간, 또다시 망설이고 흔들리는 과정을 되풀이합니다. 이 작품 또한 이전 작품과 마찬가지로 일시적인 답변에 불과하며, 만족스러운 결과가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통감하기 때문입니다. (194)
* 우리는 흔히 우리가 잘 알거나, 보편적인 기준으로 널리 공인된 당위성에서 벗어났을 때 비로소 놀라움을 느끼게 됩니다. (197)
(<아버지의 여행 가방>, J.M.G 르 클레지오 외, 문학동네,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