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에 가곤했다. 삶의 현장에서 들리는 소리를 듣고, 구체성없이 희미하게만 그려졌던 삶의 모습을 직접 보기 위해서였다. 많은 기억중에서 참기름집의 모습이 가장 또렷한데, 참기름 냄새 때문일 것이다. 구수하고 입맛을 돋구는 참기름 냄새를 맡으며,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기 위해 오래 머물기도 했다. 참깨를 씻고, 말리고, 볶고, 볶은 깨를 압착기에 넣고, 으깨고 짓이기고, 압착기가 강하게 내려 누르면, 기계 아래에 맑고 투명한 황금색깔 기름이 병안으로 흘러 들어가는 모습이 볼 만했다. 참기름 냄새가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과 구경하는 사람의 몸속까지 스며들었으며, 이웃 가게와 시장 안으로 퍼져나갔다.
맷돌 가는 여인들에 관한 주님의 말씀(루카 17,35 참조)을 들으면서 떠올랐던 참기름집의 모습이었다.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맷돌(압착기)에 자신의 삶을 온전히 집어 넣는 것과 같다. 자기의 생각과 마음속 계획과 하고 있는 일들과, 기쁨과 슬픔, 의미와 무의미, 삶에 대한 보람과 절망을 맷돌에 넣고 갈고 으깨고 짓이기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자신과 관련된 모든것이 해체되면서 그로부터 참기름과 같은 삶의 정수가 흘러나오게 된다. 이런 변화된 우리 자신으로부터 우리는 노아가 하느님의 표징을 보았듯이 하느님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안목이 생기고, 롯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고 따르는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으로 되는 것이다(루카 17, 26-30 참조). 그렇지 않고, 자신이 해체되는 것을 회피하고 외둘러 지나가려고 할 때, 시체가 썪는 것과 같은 냄새가 나지 않읅까라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