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면 나무가 꿈틀거린다. 반 고흐가 그린 삼나무의 모습이 연상된다. 바람에 따라 숲이 리드미컬하게 움직이고, 춤추는 숲으로 된다. 바람이 맞이한 나무는 언제 춤을 추었느냔 듯 움직임 하나없이 서있다. 아주자연스럽게 꿈틀거림에서 침묵으로 넘어간다. 의식적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말로 그릴 수가 없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새롭게 쓸 수가 없다. 말로서든 글로서든 표현함으로써 그 대상과 가까워진다. 몇 초 전에 어떤 생각이 나타났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할 수가 없다. 물거품과 같은 아무런 힘이 없는 생각을 붙잡고 다듬과 다듬어서 문장으로 만들어 바위를 허물어뜨리는 거센 파도처럼 만들어야 한다. 밤바람 소리를 들으면서 낮에 보았던 꿈틀거리고 춤을 추는 나무와 숲을 떠올리게 된다. 뜬금없이 절벽을 무너뜨리려는 듯 부딪치는 파도로 눈사태가 난 듯한 바다가 하조대 바다가 떠오른다. 휘몰아치는 바람에 바닷물이 솟구치고 그 힘 그대로 가라앉아 카오스적인 모습에서 창조 직전의 모습을 상상했던 바다였다. 지금은 창밖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나무과 숲 전체이 아무런 움직임없이 침묵안에 잠시 쉬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여름숲의 밤이 깊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