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수 작가가 쓴 500회 넘는 「전원일기」 248회의 "전화"편이 있는데, 김회장 집에 처음 전화를 설치했을 때의 일을 다루고 있습니다. 할머니가 친척에게 전화를 걸어 보고, 가족들 모두 목소리를 듣고 싶었던 사람에게 전화를 돌립니다. 김혜자가 연기한 김회장의 아내 이은심은 전화가 너무 신기했습니다. 밤이 되어 자다 말고 전화기를 바라보다 수화기를 듭니다. 마침 그날이 친정엄마 제삿날이어서 죽은 엄마에게도 전화를 걸 수 있을까 싶었던 것입니다. 다이얼을 돌리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전화기에 대고 말합니다. "여보세요? 우리 어머니 좀 바꿔 주세요. 감실댁이라고 하면 잘 알아요. 가르마 반듯한 머리가 얌전하시고, 맵시가 날씬하시고, 왼손 손톱 한 개가 짜개지신 양반이에요. 우리 어머니 좀 바꿔 주세요. 못 찾으면 소식이라도 전해 주세요. 막내딸 은심이가 아들 딸 낳고 잘 산다고. 아무 걱정 마시라고, 그 소리 좀 꼭 전해주세요. 향남리 사시던 울 어머니 감실댁이요 ··· . 은심이가 꼭 한 번 보고 싶다고 ··· . 깜깜한 데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추운 데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우리 어머니 계신 데가 ··· ." (<생에 감사해>, 김혜자, 150-151)
☞ 보고 싶어했던 사람이 있었을 것입니다. 보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보고 싶지만 볼 수 없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보고 싶다'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할까요? 그냥 보고 싶을 뿐입니다. 이 '보고 싶음'은 자기 눈으로 직접 보고싶다는 것 뿐 아니라 자기 손으로 그 사람을 만지고 싶다는 것이고, 그 사람의 냄새를 맡고 싶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보고 싶다'라는 말에는 바로 이런 사람이 자기 곁에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간절히 바라지만 자기 옆에 없는 사람의 부재. 그래서 '보고 싶음'은 고통입니다. 그렇지만 이 고통으로 사람들은 지금과 다른 세상이 있음을 알게 해 줍니다.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다른 세상이 있음을 알게 되는 것, 이것을 초월이라고 합니다. 김회장의 아내(은심)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보고싶어 하고, 그 어머니와 이야기하는 것은 어머니를 보고싶어 하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일 뿐 아니라, 초월에 대한 갈망을 말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