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 마이 프렌즈」(홍종찬 연출, 노희경 극본, 김혜자.나문희.고두심.박원숙.윤여정.김영옥 등, 2016 tvN) 이 드라마에서 김혜자는 72세 된 희자 역을 맡습니다.
희자는 6개월 전 남편이 세상을 떠난 다음 혼자 사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혼자 살 수 있다’를 되뇌이지만 두려운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더구나 이웃집에 사는 남자가 하루 세 번 웃통을 벗고 운동하면서 자기에게 윙크를 보내는 것을 보며 사는 게 더 두렵습니다. 이웃집 남자가 희자에게 윙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키우는 고양이에게 윙크한다는 것을 알고 친구들이 희자를 놀려대지만 희자는그렇지 않다고 우겨댑니다. 희자는 자신이 말짱하다는 것을 친구들에게 보여주기위해 정신과를 찾습니다. 그렇지만 의사로부터 ‘망상성 치매’ 진단을 받을 뿐이었습니다.
기억력이 급속도로 떨어지고 있는 희자는 친구들의 소개를 받아 ‘안 비싸고 좋은’ 치매 요양원으로 들어갑니다. 희자는 치매로 오줌을 저리는 자신의 모습을 다른 사람이 본다는 것을 견딜 수 없어 합니다. 이런 희자에게 그나마 기쁨을 주는 사람은 옛날 젊은 시절에 잠깐 연애했던 주현이 입니다. 주현이는 희자가 ‘나 잠이 안 와’할 때 ‘서머타임’을 불러주기도 하고, 성당에 가서 희자가 할 만한 단추를 붙이고 묵주알을 꿰는 일거리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주현이는 희자에게 “네가 다른 남자에게 시집 가고 나서 내가 몇 날 며칠을 울었는지 아느냐?”라고 말하지만 희자를 잘 돌보아 주고 함께 여행을 하기도 합니다. 두 사람은 군불을 땐 방에서 방가운데 가방으로 금을 그어 놓고 밤을 셉니다. 그때 주현이가 “참 세월이란 게 웃긴다. 젊었으면 빰을 맞아도 너를 으스러지게 안았을 텐데, 지금은 졸려서 못 하겠다”라고 말하며 잠이 듭니다.
아침에 두 사람은 해가 뜨는 것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희자가 살며시 손을 내밉니다. 주현이가 머뭇거리자, 희자가 “손 잡아. 무안하게 손 잡으라고 내밀었는데, 왜 안 잡아?”라고 말합니다. 희자의 손을 잡아 본 주현이는 기분이 아주 좋아 희자가 보지 않은 곳에서 춤을 추며 걸어갑니다.(<생에 감사해>, 김혜자, 243-253)
☞ 얼마 전, 치매 걸린 어머니에 대해 아니 에르노가 쓴 글과 아주 대조적인 이야기입니다.
치매 걸린 당사자의 생각과 마음을 누가 알겠습니까마는 치매 걸린 사람들이 기억을 상실해 가는 것만은 확실한 듯 합니다. 단기 기억이든 장기 기억이든, 기억은 그 사람을 그 사람이게 하는 데에 가장 큰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기억이 희미해져 간다는 것은 자신이 누구인지 희미해져 간다느 것이고,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있었던 연결고리가 끊어져 고립되어 홀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치매 걸린 사람들에 대해 좋은 기억은 점점 사라져 희미하게 되고, 아프고 힘들었고 상처받았던 기억은 더욱 더 또렷하게 기억하는 것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누가되었든 그리고 어떤 상태에 있든 사람들은 사랑의 기억으로 살아갑니다. 그 사랑의 기억이 사람들은 다시 살아나게 하고, 고되고 힘들고 고통스런 시간을 견딜 수 있게 해 주는 힘으로 됩니다. 희자는 남편이 없는 빈자리에서 불어오는 차갑고 서늘한 바람과 삶에 대한 무서움을 주현이의 섬세한 보살핌으로 이겨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주현이는 젊은 시절 사랑의 쓰라림과 그후에 격었을 삶의 온갖 고초를 희자가 내민 손안에서 잊고 치유받게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가장 바라는 것은 이런 '프랜즈'를 찾고 만나는 것이며, 가장 큰 고통은 이 '프랜즈'를 잃는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를 종이라 부르지 않고 '친구'라 불렀으며, 당신의 친구 라자로가 죽었을 때 눈물을 흘렸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