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수품 14주년이다. 14년이라는 세월이 영적으로 성숙하고 질서가 잡히고 육체적.정신적.정서적으로 균형을 이룬 기간이었기를 바라지만 불행하게도 그렇지 못했다. 표면적으로는 행복하고 좋은 활동으로 많은 성과가 있었지만 욕구불만과 좌절감은 더 깊어지고 수도사제 삶에 실패한 것처럼 느껴진다. 어떤 면에서는 사제로서 내 삶이 슬프고 아무런 결실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수도자로서의 삶이 실패한 것처럼 느껴진다. 여기저기 구멍 난 해진 옷을 효과적으로 깁지 못했다. 유익하고 중요하고 생존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일에 몰두하는 동안 나도 모르게 좀이 서서히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 언제나 절제를 지킨 것도 아니다. 만일 시내에서 누구를 만났는데 그가 술 한잔하자 하면 나는 거절하지 못하고 2,3차까지도 따라갔다. 내 가장 큰 약점은 수도자와 사제로서의 삶에 온 마음을 집중하면서 그 삶이 이끄는 방향에 따라 살려는 진정한 용기가 부족한 것이다. 어쨌든 버텨왔지만 쉽게 지쳤다. 자주 의기소침한 상태에 빠져든다. 벌써 쉰 살이다. 사람들은 내가 행복한 줄 안다. (<토마스 머튼의 시간>, 1963년 5월 26일)
☞ 머튼이 말하는 모든 것에 공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내 자신을 기준으로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의 마음에 얼마나 가까이 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진정한 용기가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에 눈길이 간다. 미적거리는 경우가 많다. 미루고 미루다 시간이 임박해서야 결정을 하곤한다. 그전에는 이렇게 하지 않았다. 깊게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라, 절도가 없기 때문에 그렇다. 다른 사람의 청을 거절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함일 수도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은 어린애의 욕심, 어리석은 마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머튼의 말을 빈다면 용기가 없는 것이다. 수품 30년이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