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사람 몸에서 얼굴이 차지하는 부분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두 손으로 감싸고 있으면 모두 가리울 수 있습니다. 이 얼굴처럼 그 사람만의 특징을 많이 갖고 있는 부분도 없습니다. 팔뚝 하나가, 다리 한쪽이 없다해도 그 사람을 누구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얼굴의 어떤 부위를 살짝 가리거나 사고로 일그러져 있다면, 그 사람이 누구인지 빨리 알아볼 수 없습니다. 이 자그마한 얼굴에 신체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들이 몰려 있습니다. 얼굴을 가만히 보면서, 눈과 코와 입과 입술과 귀, 이들이 얼마나 조화롭고 예예쁘게 자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새삼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얼굴을 만드신 분은 얼마나 아름다울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김혜자의 <생에 감사해>을 읽고 있습니다. 책 사이 사이에 있는 그분의 사진을 오래동안 쳐다보고 있습니다. 사진이지만 그분의 몸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그분의 얼굴을 보면서, 어떤 상황에서 이런 얼굴 모습을 짓고 있었을까 생각합니다. 얼굴에 주름살이 있지만 애기처럼 밝게 웃은 모습, 화사하게 웃고 있지만 슬픔이 언뜻 보이는 얼굴, 어이없고 화난 표정, 두려워서 누군가의 도움과 보호를 요청하는 듯한 표정, 괴기스런 그래서 사진이지만 오래 쳐다보고 있는 수 없는 얼굴, 어떤 것을 틀어쥐고 놓아주지 않으려는 집요한 표정등. 이 모든 감정과 생각이 그분의 마음속에 있었을 것이고 그것을 작은 얼굴을 통해 전달해 주고 있는 것이 놀랍기만 합니다. 그만큼 그분의 몸과 마음과 감정과 생각이 살아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살아있는 이것을 밖으로 끌어내는 것은 또 별개의 문제이겠지만요.
반면, 얼굴을 통해 한 두 가지밖에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봅니다. 무뚝둑함, 세상의 온갖 고통을 자신만이 겪고 있는 듯한 그래서 모든 것이 귀찮고 짜증스럽다는 얼굴. 살아있지만, 내 신체와 감정과 정서와 생각이 많은 부분 죽어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죽음을 향해 가는 모습이라고는 하지만, 얼마든지 평화로이 넉넉한 표정과 마음으로 가야할 길을 갈 수 있는 것 또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만들어진 사람이고, 하느님의 얼굴을 닮은 얼굴을 갖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