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가 나를 사귀게 되면서 버렸던 여자가, "바늘을 꽂아서 방자(남에게 재앙이 내리도록 귀신에게 비는 행위)하겠어"라고 분노에 떨며 말했다던 그 여자가 생각났다. 빵의 말랑말랑한 부분으로 사람 형상을 만들어서 핀을 꽂을 수도 있다는 것이 더이상 천치 같은 생각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동시에, 두 손으로 빵을 주무르고 머리나 심장 자리에 정성들여 핀을 꽂고 있는 내 모습을 떠올려보니, 내가 아닌 다른 사람, 가엾고 순진한 한 여자를 보는 것 같았다. '거기까지 내려갈' 수는 없었다. 하지만 거기까지 내려가보고 싶은 유혹에는, 우물 안으로 몸을 수그려 저 깊숙한 곳에서 떨고 있는 자신의 영상을 바라볼 때처럼, 사람을 끌어당기면서도 무시무시한 그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었다. (<집착>, 33)
☞ 질투가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가득 채워 질투가 날 것으로 다가올 때, 그 질투가 사랑하는 사람(혹은 사랑했거나 사랑했다고 믿었던 사람)과 관련될 때, 어떤 상태에 빠지게 되는가? 아니 에르노는 이 질투에 대해 자기 일이 아닌 것처럼 기술하고 있다. 자기가 체험한 질투라는 주관적인 감정을 객관화시켜 표현하기 위해서는 '죽음'의 단계를 거쳤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겪고 난 다음에, 다른 사람의 질투를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순간이면 태초의 야만성이 솟구쳐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만약 사회가 내 안에 잠재해 있는 충동에 재갈을 물리지 않았다면 내가 저지를 수도 있었을 행위들..."(31)이라고 말한다. 더불어 이렇ㄹ게 말하기도 한다. "전에는 비난을 불러일으키거나 폭소를 자아냈던 행위들을 지금은 대체로 수긍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가 '나도 얼마든지 저런 일을 저지를 수 있을 텐데'가 된 것이다."(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