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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끈 다랑쉬생활글/생활 속에서 2022. 10. 27. 21:02
거의 20년 전, 가을이었습니다. 용눈이 오름과 다랑쉬 오름과 아끈 다랑쉬 오름에 왔었습니다. 해가 질 무럽 아끈 다랑쉬 오름에서 억새를 보았습니다. 너무 아름다워 넋을 잃고 서 있었습니다.
붉으스름한 햇빛과 역광으로 비쳐진 하얀 억새, 그 억새가 바람에 따라 파도처럼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멀리 한라산이 있었고, 언젠가 보름에 교우들과 애기들과 함께 와서 별을 보고 성산포의 야경을 보며 시간을 보냈던 용눈이 오름이 앞에 있었습니다. 한라산 뿐 아니라 성산포와 우도가 보였고, 발 아래에는 제주의 시커먼 색깔의 밭과 군데군데에 있는 돌무더기가 보였습니다.
이런 제주의 한 가운데 홀로 서 있었고, 그 홀로있음이 결코 외롭지 않고 오히려 온몸과 마음속에 뭔가로 가득 차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햇빛이 황금색에서 진홍색과 검붉은색으로 되고, 주변이 어둑어둑해지는 것을 보면서 오름에서 내려왔습니다. 그날의 강렬한 기억때문에 아끈 다랑쉬의 억새를 다시 한 번 보고 싶다는 마음을 간직하며 살았습니다.
오늘 오후 20년 전에 있었던 그 자리에 다시 섰습니다. 억새를 보았고, 한라산과 다랑쉬 오름과 용눈이 오름, 성산포의 바다를 다시 보았습니다. 20년 전의 나와 현재의 나가 오버랩되는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