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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갑지만 부드러운기도.영성/Spicul 2022. 4. 26. 20:29
<음악, 당신에게 무엇입니까>, 이지영, 글항아리, 2021
* "소프라노 조수미-차가운 사람은 좋은 소리를 못내요."(161-188 페이지)
* 성대는 사람의 생김새와 마찬가지로 태어날 때부터 그만의 모양이 있어요. 음색이나 높은 소리를 낼 수 있는지 여부, 가능성, 특성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는 거죠.
* 내가 더 많은 무대를 무리지 못해 아쉬운 것보다, 그분들이 먼저 용기를 내고 나를 믿어주신 것에 대한 고마움이 더 큰 게 아닐까.
* 달랐던 출발선 덕분에 나는 강해졌고 시간이 지나니 점점 유연해졌고, 결국 그런 경험이 현재까지의 나를 살아오게 한 원동력이 됐어요.
* 무대 위에 서 있는 짧은 몇 시간, 그것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은 내 모습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사람을 미워하거나 욕심과 질책에 가득 차 마음이 굳고 차가워져 있으면 아무리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고 해도 누군가의 가슴을 울리지 못해요. 신기하게도 그 음악이 오래가지 못합니다. 언제든 나보다 더 좋은 소리를 가진 사람이 나타날 수 있고, 내 부족함을 느끼게 될 일은 더 있을 거예요. 그래도 내가 흘려보내는 음악이 진정 아름다워지려면, 더 큰 힘을 얻으려면, 나 자신에게 차가운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무대 위에 오르는 사람들은 많은 것을 희생해야 돼요. 기술적인 완벽함을 넘어 감동을 전해야 하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하니 늘 생각이 많고 긴장하죠. 사람들은 무대에선 짧은 순간만 보지만, 일상은 악기인 몸 관리를 위해서라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어요. 무엇보다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늘 어딘가로 떠냐야 하는 일상은 그것ㅇ르 견디는 것만으로도 버거울 때가 많아요.
* 착각하지 쉽지만 타고난 재능은 남 앞에서 과시하고 자랑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예요. 예술성을 높이려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결국엔 어떤 식으로든 진정한 아룸다움이 나를 통해 전해지도록 사람이 완성되어야 하거든요. 예술가는 먼저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야 하고 선한 영향력을 가져야 해요. 내가 먼저 감동받아야 하고 그것을 지켜내기 위해 강하고 투철한 정신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 미션을 수행하지 않으면 단순히 노래하는 재주군이 되는 것이고, 테크닉이 좋고 화려한 단발성의 이벹트를 만드는 사람이 되는 거죠.
* 예술가란 가숨속에 자그만한 연못을 하나씩 가진 사람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그저 흘려보내는 자잘한 감수성들이 예술가의 연못 속에는 하나둘씩 고여드는 거죠. 연못에 물이 모여 찰랑거리면 소설가는 글로 성악가는 노래로 그 물을 퍼올립니다. 그 연못은 도대체 마르는 법이 없죠. 퍼올리고 퍼올려도 끊임없이 고이거든요. 아마 숨을 쉬고 생명이 남아 있는 한 마르지 않을 것 같아요.
* 살면서 닮고 싶었던 분들은 철저하게 자신을 관리하며 살았고, 동시에 철저하게 남을 생각하면서 살았어요. 무대를 떠난 모습은 한없이 약할 수도 있지만, 자신의 영향력이 어디까지 미칠 수 있는지 생각할 때 가만히 있을 수가 없거든요. 인간적으로 살지 못하는 사람들의 삶이 걱정되고 말할 수 없는 생명이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에 마음이 힘들어져요.
* 팬데믹을 겪는 동안 많은 분이 그동안 돌아보지 못했던 주변과 간과하고 있던 현실,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해봤을 거예요. 마지막 인사도 못 하고 혼자 쓸쓸히 맞은 가족들의 죽음을 보면서 아픔과 슬픔, 고통, 본질에 대해 깊이 숙고하게 됐을 것 같고요. 바로크 음악은 본질만 남겨놓고 주변을 둘러싼 많은 것을 걷어 낸 음악이예요. 종교 곡이 많기 때문에 노래하는 사람이 영적으로 꽉 채워져야 영혼이 담긴 음악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그것은 내 스스스로 정직해지면서 얻어내야 하는데 그게 숙제였죠.
☞ 우리 마음속에 있는 '작은' 연못. 기도한다는 것은 그 '연못'을 지키는 일이다. 연못이 파묻혀 샘물까지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 매일 그 주변을 맴도는 일이다. 사람을 만나 사랑하고 미워하고 헤어지고, 일을 하면서 성공의 기쁨을 맛보고 실패와 좌절의 쓰라림을 맛보고, 이렇게 하면서 시간이 흐르지만 그곳을 벗어나지 않는 것. 그곳에 물이 고이는 시간을 기다리고, 그 깊숙한 곳으로부터 물을 퍼올리는 고된 노력을 마다하지 않은 것, 기도하는 사람이 반드시 해야 할 일들이다. 자기 분야에서 '대가'로 인정받는 사람들은, 삶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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