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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망-장 르 부티예 드 랑세의 초기 경력은 17세기 프랑스 귀족 성직자로 볼 때도 예외적이긴 했지만 비정상적인 건 아니었다... 유명한 사교계 명사이자 미인이며 나이가 그보다 두 배나 많았던 몽바종 공작부인을 향한 그의 열정이 흔히 말하는 어떤 특별한 '관계'까지 갔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둘의 관계는 소름 끼치는 최악의 방식으로 끝났다고 알려졌다. 몽바종 부인이 병에 걸려 몸져누운 어느 날, 랑세는 예고없이 파리에 있는 그녀의 병실을 찾았다. 그는 그곳에서 관 속에 누운 목 잘린 공작부인의 시간과 피 묻은 손수건에 싸여 탁자 위에 놓은 공작부인의 머리를 목격했다. 돌팔이 장의사가 짧은 관에 시신을 넣으려고 머리를 잘랐다는, 거의 믿기지 않는 소문이 돌았다. 그 사건은 랑세의 인생을 바꿔버렸다. 그는 성을 팔고 전 재산을 나눠준 다음 모든 명예 성직에서 물러났으며, 결국은 마지막으로 남은 하인을 데리고 자기 소유였던 라 트라프 수도원으로 들어가 수도자가 되었다...
트라피스트 수도자의 삶이란 길게 이어지는 속죄요, 황야에서 겪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겟세마니 동산에서 방황했던 그리스도의 고뇌, 십자가의 길과 골고타 언덕에서 끝난 그리스도의 마지막 희생에 대한 평생에 걸친 모방이다... 이처럼 고행하는 삶은 가혹하지만 어떤 영적인 위안을 준다. 첫째는 모든 세속적인 소유물과 허영심, 야심을 물리침으로써, 또 개인적인 죄악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열망하고 때로는 그런 삶을 성취함으로써 다시 얻은 가뿐함과 영적 고양, 자유의 경험이다. 둘째는 자신들의 기도와 고행이 영혼을 구제하고 인류의 죄를 덜어주는 속죄와 치유의 홍수를 일으킨다는 확신에서 비롯되는 기쁨이다. 셋째는 이런 희생의 삶이 하느님께 봉헌된다는 믿음, 그 희생의 삶이 하느님의 사랑에서 유래되었으며 자신의 영혼을 하느님께 더 가까이 이끌어 간다는 믿음이다... 랑세는 점차 사람들을 괴롭히는 극악한 인물이 되어갔다. 침착하지 못하고, 싸우기 좋아하고, 복수심에 불타는 폭군이었으며, 인간애라는 환영을 뒤집어쓴 거만한 자였다... 그래도 그는 거의 확실한 몰락과 부패로부터 시토 수도회를 구해낸 위대한 개혁가였다...
대개 수도자들이란 고된 노동과 끊임없이 밀어닥치는 영적 의무들 때문에 몸은 몸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팍팍한 사람들이라 유혹의 속삭임 따위는 들을 새도 없이 몇 개월씩을 보낸다. 그러다 아닌 밤중에 갑자기 불안한 생각들이 엄습하기 시작한다. 대개 영적인 의심을 불어넣는 속삭임이 세속적이고 성적인 망상들을 키운다. 유일한 방어책인 기도와 일종의 정신적 비상을 통해 이 위험한 습격에서 벗어나고 나면, 수도자는 완전히 탈진한 듯한 기분을 느낀다... 어떤 수도자도 아무리 성스러운 수도자라도 삶에 면역이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수도자의 3대 서원 중에서도 정결의 서원이 평생에 걸쳐 가장 혹독한 서원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처럼 많은 인간 본능을 뱀 새끼처럼 휘어잡아 꿈틀거리는 채로 자루에 넣어 어딘가에 가둬놓을 수 있을까? 그것도 평생을? 해답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정신의학의 원리들이 정확하다면 수도자들은 아무리 많은 기도와 신앙과 의지력으로도 막지 못하는 언젠가는 터질 판도라의 상자가 틀림없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자신의 의지를 완전히 포기하는 대신 온갖 문제와 시련을 풀어주고 극심한 피상적 고통의 삶을 평화롭고 기쁜 삶으로 바꿔주는 하느님의 뜻을 받드는 것. 그것이 수도원 바깥의 사람들로서는 거의 이해할 수 없는 수도생활의 비밀이다...
트라프 대수도원의 방문객이라는 위치는 수사들의 생활에 참여하거나 그들의 삶에 대해 뭔가 구체적인 의견을 형성하기에는 너무나 동떨어지고 유리된 위치였다. 그러나 처음에 느꼈던 우울함은 하루 이틀 사이에 사라지고, 우울은 트라프 대수도원의 어슴푸레한 매력과 절대적인 침묵과 고독에서 오는 기쁨으로 바뀌었다. 내 마음은 침착하고 부드러워졌다. 나는 시토 수도회의 어떤 일면을 보고 움찔할 만큼 일반적인 편견을 가졌고, 트라피스트 수도생활의 기저에 거의 초인적인 관대함과 이타심이 놓여 있음을 알아챌 정도로는 세상물정을 알았다. 그리고 내 편견과 안목이 모두 엄밀하지 않다는 사실과 내게는 거기서 발견한 것들을 마음대로 재단하고 기록할 만한 정신적 도구가 없다는 사실을 알 정도의 겸손함과 직감은 있었다. 나는 아직도 숨죽인 겨울의 고독속에서 이어지는 그 삶의 조건과 가능성에 관해 한마디도 말할 자격이 안되는 것 같아서 당혹스럽고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침묵을 위한 시간>, 패트릭 리 퍼머/신해경, 봄날의 책, 2016, 7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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