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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하오리까?생활글/생활 속에서 2021. 12. 12. 22:43
"병자를 위한 기도를 하는게 낫습니까, 선종을 위한 기도를 하는게 낫습니까?" 한 형제로부터 받은 질문입니다.
50년 이상을 함께 살았던 부인이 1년 2개월 정도 중병 중에 있습니다. 6개월 전부터 의식이 없는 상태에 있었습니다. 2개월 전에 의료진으로부터 연명치료를 시작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가족들도 회복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연명치료를 중지해야 하지 않나라는 의견을 말하는 가족들도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대면 면회도 할 수 없습니다.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1주일에 한 번 짧은 시간 화상 면회를 할 뿐입니다. 화상면회를 싫어하는 가족들도 있습니다. 치료비가 상당히 많이 나옵니다... 등등. 의식없이 누워있는 분을 화상으로 보여주는 짦은 시간에 자매(부인)를 위해 무슨 기도를 해 주어야 하는지 결정할 수가 없어 저에게 물어보았던 것입니다.
병자를 위한 기도와 선종을 청하는 기도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기가 힘들었을까?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병자를 위한 기도'는 환자가 회복되리라는 희망과 믿음에서 합니다. 당신의 부인이 병상에서 일어나기를 바라고 있으며, 그런 은총을 청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당신의 부인이 회복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상태를 사실로 받아들이기가 힘든 것입니다. 당신의 부인이 회복될 수 없는데, 병자를 위한 기도를 하는 것처럼 여겨졌을 것입니다.
'선종을 위한 기도', 주님의 자비에 맡기며 편하게 주님께 돌아가는 은총을 청하는 것입니다. 병자가 회복될 수 없다는 현실을 사실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그 상태에서 당신의 부인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현실이 그러하지만, 당신의 부인을 (편히)죽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처럼 여겨져 마음이 괴로울 것입니다. 병자를 위한 기도 대신에 선종을 위한 기도를 하기도 어려운데, 어떠허게 연명치료를 중단해 달라고 의료진에게 스스로 청할 수 있겠습니까?
제3삼자들은 말하겠죠. 당신(형제)이 그렇게 붙잡고 있기 때문에 이 지상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고. 이제 놓아드릴 때가 되었다고. 병상에 누워있는 당신의 부인이 당신에게 무엇을 바라겠느냐고 생각해 보십시오. 자매가 이런 고통속에서 나를 이제 그만 풀어주십시오라고 당신에게 말하지 않겠습니까 등등. 그러나 반세기를 함께 살면서 두 분을 맺어놓고 있었던 기쁨과 희망, 슬픔과 괴로움, 기억과 추억과 회한 등으로 깊게 엮어진 인연이 그리 쉽게 끊어지겠습니까? 이 땅에서 맺어진 인연으로부터 쉽게 풀려날 수 있겠습니까?...
군중이 세례자 요한에게 물었습니다. "저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루카 3,10) 군중의 한 사람이 되어 저도 묻습니다. 제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제가 어디로 가야 하나요, 제가 무엇을 해야 하나요... 숱하게 많은 '어찌 하오리까'라는 질문이 합당한지,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이 있기나 한지. 어찌하여 이런 질문에 대해서 명쾌하고 자신있게 확신을 가지고 설득력있고 조리있게 말 할 수 없는지....
10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 상당히 오랫동안 매일 선종을 위한 기도를 바쳤던 때가 있었습니다. 형제가 느끼고 있는 것과 같은 어려움없이 선종의 기도를 바칠 수 있었음에 새삼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제는 내자신을 위해 선종의 은혜를 청하는 기도를 매일 바쳐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