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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하루였다. 늦잠을 충분히 자지 못했다. 주일 늦잠을 자지 못하면 주중에 일찍 일어나기가 힘들다. 심리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일어나면서 벌써 오늘 해야 할 강론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매일 뭔가 끼적거리는 힘을 모아서 매주 한번만이라도 강론을 써보려고 하지만, 제대로 되지 않는다. 마음속으로 어떻게든 되어갈것이라 생각하는 못된 버릇 때문이다. 강론을 쓴다는 것이 엄청 힘든 일이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뭐가 중헌디?' 해야 할 말에 대해 머리속으로 생각하며 간단하게 아침식사. 손님들이 곧 오실 것이다. 대축일미사와 3백주년 기념미사를 함께 하기로 하면서 초대한 분들이다. 미사 드릴 장소와 사무실을 오가면서 준비하면서 좀 더 일찍 일어날 걸 하는 마음과 늦잠자지 못한 것 사이에 오가기를 반복한다. 어제 저녁 무척 추울 것이라 말들했는데, 실제로 그다지 춥지 않았다. 오랫만에 보는 가을 햇살이 아주 좋았다. 구름 한 점 없이 푸르고 푸른 하늘, 써늘한 날씨에 정신이 맑아진다.
많지도 않지만 사람들 앞에서 하느님에 대해 말하기가 쉽지 않다. 미사 시간을 1시간이라고 정해놓은 것도 아닌데, 그 시간안에 마쳐야 한다는 압박감이 마음을 더 급하게 한다. 창립자의 인간적인 면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강론이 아니라 강의처럼 되어버렸다. 물론 창립자에 대해 알면 좋은 분들이 많았고, 일반인들에게 창립자에 대해 알려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사랑은 측정 가능한가? 양과 무게와 높이와 길이를 잴 수 있는가. 측정가능하다. 눈에 보이는 선물과 물건등으로 사랑을 측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 외에도 함께 하는 시간의 양을 보면서 사랑을 측정할 수도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지내는 것은 시간이 아깝지 않고, 함께 있으면 있을수록 함께 있고 싶어지는 것이 사랑이다. 오직 사랑에서만 낭비가 허용되는 것이다. 시간을 낭비해도 좋고 돈을 낭비해도 아깝지 않고, 자기가 갖고 있는 좋은 물건을 마음껏 주어도 하나도 아깝게 여겨지지 않는 것이 사랑이다. 살아있는 사람, 가까이 있는 사람에 대한 사랑의 측정은 시간인데, 함께 할 수 없는 사람에 대한 사랑을 어떻게 측정할 수 있나. 기억하는 것이다. 기억하는 횟수와 기억하는 시간을 보면서 그에 대한 사랑을 측정할 수 있다.
자신의 모든 시간과 힘과 노력과 재능을 하느님께 온통 쏟아부었던 사람. 자신의 전존재를 통해 예수님을 기억했던 사람. 십자가의 성 바오로시다. 1694년에 태어났던 분이시다. 26살 여름에 십자가에 계신 주님에 대한 환시체험을 하고, 그것이 얼마나 강했던지 그해 11월 22일에 주교님으로부터 참회복을 받은 다음 40일 피정을 했다. 그 피정동안 예수님의 고통과 십자가를 증거하고 선포할 사람들을 모으려는 생각을 했다. 그후 그의 남은 삶은 모두 이것을 위해 것이었다. 1775년 돌아가실 때 그분이 설립하신 수도원이 12개였으며, 열세번째의 수도원은 교황 클레멘스 14세로부터 하사받은 것이었다. 로마 콜로세오 옆에 있는 큰 성당과 수도원이고, 아주 넓은 정원을 가진 아름다운 수도원이다.
창립자에 대한 인상을 무서운 분이시다. 이렇게 되었던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고난'이라는 말때문이다. 고난, 고통, 고독 등의 말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할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것이 사람들의 마음이다. 두번째로 창립자에 대해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거부하고 무서워한다. 창립자에 대해 알 수 있는 자료가 많이 않았기 때문에 그분을 무서워 했으리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창립자에 관한 상본과 조각품이 너무 무섭게 표현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분의 모습과 얼굴이 살아 활동했을 때의 모습은 아니라고 하더라고 무섭게 그려져 있는 모습을 보면서 가까이 하고 싶은 사람또한 많지 않다. 그렇지만 그분이 무섭고 강하고 요지부동이고 철저하기만 했다면, 그분이 돌아가시기 전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수도원으로 몰려오지는 않았을 것이고, 그렇게 많은 수도원을 지을 수 있게 후원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무서운 면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매력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고, 바로 이것 때문에 많은 사람이 그분의 뒤를 따르려 했던 것이다.
그분이 어떤 분이었는지, 가장 잘 나타나는 것은 그분이 쓰신 공문서가 아니라 그분이 사적으로 쓰신 편지를 통해서 이다. 편지의 특성상 편지 쓰는 사람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일을 처리하고 결정하고 판단하고 어떻게 가르쳤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이 편지이기 때문이다.
창립자께서 쓰신 편지 중에서, 그분이 70대 초반일 때 쓰신 두 통의 편지에 대해 말씀드렸다. 첫째는 바르톨로메오 수사님께 특권을 주신다는 편지이다. 이 수사님은 창립자와 30살 정도 차이가 나는 사람이며, 창립자와 바로 밑의 동생을 끔찍히 돌보아 주었고, 이 두분이 병중에 있을 때 정성을 다해 도와주었다. 창립자는 개인적으로 당신이 받았던 수사님의 정성스런 간호에 대해 바르톨로메오에게 감사를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수사님에 관해서 남기신 유언 편지 소개 한다.) 창립자께서는 수도회 창립자답게 카리스마가 있었다. 그렇지만 그와 더불어 아주 자상하신 분이었고, 섬세하셨으며, 사람과 관계되는 일에 대해서는 아주 예민하게 반응하셨다. 바로 이런 인간적인 매력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따랐을 것이다. 두번째 편지는 당신의 제의방 담당 젊은 수사에게 쓰신 편지였다. 이것에 대해서는 이 블로그 어딘가에서 언급했다.
고난회원으로 불림받았다는 것으 창립자께서 사셨던 방식으로 산다는 것이다. 그분이 강조하셨고 추구하셨던 것과 같은 방향으로 나가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십자가에 고통받고 돌아가신 분. 이분을 증거하고 선포하는 대에 혼신의 힘을 다하는 삶. 여기까지 하다가 방향을 잃어버렸다. 생각이 익지 않았어 피상적인 말만 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반복해서 하는 연습을 소홀이 했다. 지금 생각해보려고 해도 마음이 모아지지 않아 쓸 수가 없다. 오늘 하루종일 조금 전까지 너무 바쁘게 지냈기 때문에 체력이 다 해서 정신을 모을 힘이 없기 때문이다. 오후 시간은 이곳을 찾아온 사람들과 함께 지냈다. 틈나는 시간이 있으면 쉬었지만 그것 가지고는 조금 부족했다. 저녁기도 시간에 기도하고, 저녁을 손님들과 함께 먹었다. 이야기할 때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생각하는 대로 생각이 나오는 대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은 누군가가 그 이야기를 잘 듣고 있고 말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부메랑처럼 말이 자기에게 되돌아 오지 않고 목표지점에 그대로 안착하면 힘들이지 않고 말을 할 수 있다. 그래서 공감대가 형성된 상태에서 하는 이야기가 재미있는 것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동질감에서 더 좋아하게 된다. 색시가 예쁘면 처갓집 기둥을 보고도 절을 한가도 하지 않았던가.
저녁 시간은 아주 추웠다. 가을에 난데없이 겨울한파가 습격한 것이었다. 보름은 아니지만 보름처럼 커다란 달. 어둠속에 잠깐 머문뒤에 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달과 별과 가을속의 겨울과 적막함 속에 더 머물고 싶었지만, 추위때문에 더 머물수가 없다. 그러고 보니 여름 바지을 입고 있었고, 윗옷도 추위를 막을 수 있을 정도로 두툼한 옷이 아니었다. 길고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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