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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을 보내면서, 한국 천주교회사 강의였던 <하늘로 가는 나그네>를 읽고 있다. 초기(대원군이 하야 하는 1874년 까지)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는 순교의 역사 그 자체였다. 동서양을 막론한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듣거나 읽으면서 '설마?'라는 의구심을 갖게 할 정도로 잔혹한 형벌을 받았고 죽었으며, 그에 못지 않고 순교자(martyr)들이 증거하면서 하셨던 말씀과 행적 또한 놀라울 뿐이다. 그 중에서 조선 교구의 초대 교구장이셨던 바르톨로메오 브뤼기에르 주교님에 관한 이야기.
1801년 신유박해 때 사제로서 한국에 처음 오신 주문모 신부님이 순교하셨다. 정하상과 유진길을 중심으로 사제영입을 위한 탄원이 계속되었다. 1831년 9월 9일, 그레고리오 16세 교황께서 조선 교회를 북경 교구에서 독립시키고 조선 교구로 선포하셨고, 초대 교구장으로 바르톨로메오 브뤼기에르 주교님을 임명하셨다. 당시 브뤼기에르 주교님을 태국에 계셨고, 그 다음 해에 조선을 향해 떠나셨다. 그때까지도 조선은 박해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입국하는 것이 쉽지 않았고, 당시의 교통 상황에서 태국에서 조선까지 여행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많은 난관을 거쳐가면서 2년이 지난 후 만주 펠리구라는 교우촌까지 오셨지만, 그곳에서 병사하셨다.
이런 고통스런 여행을 하면서 그분이 기록하셨던 편지의 몇 구절이다.
"나는 가야 한다. 내 양떼가 기다리는 곳으로. 내가 가야 할 곳이 얼마나 멀고 얼마나 험난할지 모른다. 단 하나 하느님의 뜻에 따라 당신이 내게 맡기신 당신의 양을 만날 수 있을 때까지 가야 한다는 것이 나의 의무임을 안다." "이제 내가 가지고 왔던 마지막 차도 다 마셨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내 몸무게는 샴을 출발하던 때의 절반으로 줄었다." "내 몸에 털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다 빠졌ㄷ. 온갖 짐승과 곤충들과 기후변화로 피부가 성한 곳이 없다. 이제 내가 갈 수 있을런지 하느님만이 아신다. 나는 다만 양떼가 기다리는 곳을 향하여 하느님만을 의지하며 가고 있다." 그분이 최후에 남긴 글은 "호박 삶은 물을 두 모금 마셨다. 지금 나무 밑에서 조금 자 주어야 오늘밤에 또 출발할 수 있다."
"저기 꿈쟁이가 오는 구나. 이제 저 녀석을 죽여서 아무 구덩이에나 던져 넣고 사나운 짐승이 잡아먹었다고 이야기하자. 그리고 저 녀석의 꿈이 어떻게 되나 보자."(창세 37,20)
하느님을 찾는 사람들은 모두 꿈동이들이다. 그 꿈이 큰 것이었든 작고 소박한 것이었든. 그 꿈을 통해서 우리 각 개인을 부르셨고, 그 꿈을 믿고 길을 떠난 사람들이다. 자신이 꾸었던 꿈이 실현되는 것을 보는 기쁨을 누리를 사람도 있고, 그 꿈이 무참히 망가지는 것을 보면서 자기가 헛깨비를 본 것이 아닌가 의심하며 죽는 사람도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갖게 하신 꿈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겪는 일상의 고통과 십자가는 그 꿈이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한 불쏘시기에 불과하다. 불쏘시개라고 해서 값어치 없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자기 만을 볼 때 그렇게 말 할 수 있겠지만, 그 불쏘시개 없이는 하느님 구원의 역사가 진행될 수 없는 것이다. 신앙인이란 미래에 확실히 드러나고 밝혀지고 이루어질 것을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것을 현실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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