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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어떤 상대와 자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두 사람은 서로 사랑의 확인하고자 합니다. 나에 대한 너의 사랑을, 너에 대한 나의 사랑을. 추상적인 것만 같은 이 사랑을 측정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자기가 걸어왔던 거리가 몇 킬로미터고, 만보기를 통해 자기가 걸었던 걸음 수를 측정하고, 낚시로 잡은 물고기 크기를 측정하듯이. 측정 단위에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길이에 관한 것과 양에 관한 것과 시간에 관한 것 등이 있습니다. 측정하는 도구에 많은 변화와 발전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사람의 신체를 기준으로 했습니다. 손가락의 길이와 팔뚝의 길이, 손바닥의 넓이와 가슴의 넓이, 눈을 뜨고 감는 것이 등이었습니다. 위에서 꾸르럭 거리는 소리가 측정단위가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있습니다.
여러가지 측정 도구와 단위중에서 시간을 측정하고 시간을 나타내는 단위가 가장 나중에 나왔을 것 같습니다. 시간처럼 추상적인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이 말씀하신 것처럼 시간에 대해 묻지 않았을 때는 시간에 대해 잘 알고 있지만, 시간에 대해 묻는 순간 혼란속에 빠지게 되고 미지의 세계 암흑의 세계로 빨려들어가게 됩니다. 시간은 어떤 사건과 사건없이 설명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건과 또 하나의 다른 사건 사이를 시간이라고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했던 사건과 지금 책상에 앉아서 책을 보고 있는 사건 사이를 시간이라고 합니다. 세수했던 사건에 대해 말할 때 과거라하고 책을 읽고 있는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현재라고 합니다. 과거와 현재와 더불어 미래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미래란 마음과 생각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그러나 아직 구체화되지 않은 사건을 말합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모두 시간과 관련된 것입니다. 구체화된 사건에 대해 다루는 과거와 현재의 시간은 측정할 수가 있습니다. 측정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삶을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서 시간인 것입니다.
애기가 엄마에게 "엄마, 나 사랑해?"라고 묻고, 엄마는 "응!"이라고 응답합니다. 애기가 다시 "얼마나?"라고 물으면 엄마는 두 팔을 펼쳐보이면서 "이만큼!"이라고 말합니다. 아이에게 사랑을 확인시켜 주는 방법은 양 관계되는 듯합니다. 사랑하는 연인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자기 나 사랑해?"라고 물으며, 상대방이 "응"이라고 말합니다. 상대방이 다시 "얼마나?"라고 물으면 두팔을 펼쳐보이며 "이만큼"하고 대답합니다. 연인사이에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충분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부족합니다. 왜냐면 사람의 성장해 가면서 사랑을 확인하는 방법 또한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구원투수로 등장하는 것이 시간입니다. 시간이 등장하여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을 확인시켜 안정되이 생활할 수 있게도 하고, 두 사람의 사랑이 맨숭맨숭하거나 차갑게 식어있음을 알려 주기도 합니다.
사랑은 함께 있는 시간으로 측정할 수 있습니다. 1시간 함께 머무는 사랑과 12시간 함께 머무는 사랑 사이에 차이가 있습니다. 시간은 사건과 사건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함께 머문 이 시간은 여러가지 사건이 일어났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사건을 겪으면서 서로가 서로에 대해 알게 됩니다. 아는 만큼 사랑하게 된다라는 말이 그냥 한 말이 아닌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과 시간을 얼마만큼 공유하고 있는지 살펴보면서 사랑의 양과 깊이와 넓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몸이라는 구체적인 물질로 되어 있고 각자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홀로있을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상대방과 하루 24시간을 함께 할 수가 없습니다. 하물며 어떻게 1년 혹은 평생이라는 시간을 공유하며 살 수 있겠습니까? 이런 면에서 주님께서 성체와 성혈을 주시겠다는 말씀은 심오하고도 심오한 말씀입니다. 믿은이들의 몸속으로 들어가 함께 하시겠다는 말씀을 그렇게 표현하셨고, 구체적인 징표로 남겨주신 것입니다. 교회에서 성체성사를 사랑의 극치라고 말한 것을 시간이라는 개념을 통해서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이렇게 드러내시는 주님께 대한 우리의 응답은 시간의 봉헌입니다. 물리적으로 시간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분이 현존하시는 성당을 찾아가는 것이고, 그분의 말씀인 성경을 읽는 시간을 내는 것이고, 어디에나 계시는 그분과 함께 침묵속에 고요하게 머무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이렇게 시간을 내어줄 때 그분께서는 우리의 일상과 마음과 영혼안에서 어떤 사건을 일어나게 하십니다. 그리고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그분과의 관계가 깊어지는 것이고, 그분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확인해 드리는 것이고, 우리에 대한 그분의 사랑을 확인받으면서 구원의 길을 걷고 구원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