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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박함기도.영성/다네이 글방 2021. 10. 13. 21:08
종교 호감도에 관한 조사를 보면, 천주교에 관한 호감도가 낮은 것은 아닙니다. 가끔 '내가 종교를 갖게 되면 천주교를 택하겠다'라는 말을 듣곤 합니다. 그렇지만 성당에 함께 가실까요라고 초대하면 거의 대부분 손사래를 칩니다. 호감이 있고 관심이 있지만 딱 거기까지, 행동으로 옮기기가 쉽지 않다는 말입니다. '종교를 갖는다'는 말을 이해는 합니다만, 그리스도교적으로 맞지 않는 말입니다. 절대자 하느님을 자기가 선택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으로 천주교에 입문한다, 하느님을 받아들인다, 혹은 하느님께 귀의한다라는 말이 맞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책에 대한 관심이 있다고 말합니다. 실제적으로 책읽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글쓰기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써볼까요?'라고 말하면 대부분 손사래를 칩니다. 호감이 있고 관심이 있지만 딱 거기까지,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기기가 쉽지 않다는 말입니다. 특히 글쓰기에 관한 말을 하면 거의 대부분이 손사래를 칩니다. 그 이유를 절박함이라는 관점에서 말해보고 싶습니다.
절박하게 외롭지 않은 것이고, 절박하게 할 말도 없고, 절박하게 쓰고 싶은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외로움을 상쇄하거나 잊게 할 수 있는 대체물이 있습니다. 자기속에 들어 와 있는 말이 자기말이 아니라 모두 다른 사람의 말이기 때문에 어떤 말을 하지 못해 답답하지도 않습니다. 자기 말과 생각을 속시원히 털어놔 본 적도 없고 그것을 글로 써본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쓴다는 것은 생각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자기가 왕자인 줄 모르는 거지나 오랫동안 오리와 더불어 살면서 자기가 오리라고 생각하고 있는 백조처럼, 자기 안에 숨겨져 있는 보물과 보화를 끄집어 낼 생각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매일 그냥 그렇게 평범하게 삶에 순응하면서 주어진 것에 만족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복된 사람이고 복된 삶입니다. 그렇지만 딱 거기까지, 더 나은 행복 더 깊은 삶으로 들어가는 것을 외면하면서 삽니다.
절박함은 두려움을 몰아냅니다. 불속에 있는 자기 아이를 보고, 엄마는 두려움없이 불속으로 뛰어듭니다. 모든 엄마들이 불속으로 뛰어들지 않습니다. 아이의 엄마만 불속으로 뛰어듭니다. 모든 사람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어려움을 감수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삶에 대한 절박함과 하느님을 향한 간절함 때문에 뭐라도 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디로 뛰어드는가? 그 많고 많은 수단 중에서 말과 글이 그나마 쉽기 때문에 책속으로 뛰어들고 글속으로 뛰어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