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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언어의 쇠락에는 궁극적으로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원인이 있는 게 분명하다. 이런저런 작가들 개개인이 나쁜 영향을 끼친 탓만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결과가 원인으로 작용하여 본래의 원인을 강화하는 바람에 더 심한 결과를 초래하는 식의 과정이 무한이 반복될 수도 있다. 자신이 실패자라는 기분에 술을 마시는 버릇을 들인 사람이 술을 마시는 바람에 더더욱 실패하게 될 수 있는 것이다. 영어의 경우에도 그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의 생각이 어리석어 영어가 고약하고 부정확해지지만, 언어가 단정하지 못해 생각이 더 어리석어지기 쉬운 것이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건 이런 과정을 역전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현대의 영어에는 특히 글로 표현되는 영어에는 나쁜 습관이 너무 많고 그것이 모방되어 퍼져나가고 있는데, 그것은 마땅한 수고를 아끼지 않으려는 마음만 있으면 피할 수 있는 습관이다. 그런 습관을 제거한다면 생각을 보다 명료하게 할 수 있으며, 생각을 명료하게 한다는 건 정치적 개혁에 필요한 첫걸음이기도 하다(256).... 오늘날 최악의 글쓰기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적절한 단어를 선택하고 의미를 더 명확하게 하기 위해 알맞은 이미지를 창조해내는 데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누군가가 이미 정리해놓은 긴 어군들을 이어붙이고 순전한 속임수로 그것을 받아 들여질 만하게 만드는 데 있다.(267)... 생각이 언어를 타락시킨다면, 언어 또한 생각을 타락시킬 수 있다.(271)...
영어를 지키는 것은 옛것을 선화하는 취향과는 상관이 없다. 오히려 유용성을 다한 모든 단어나 숙어를 폐기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올바른 문법이나 구문과도 상관이 없다. 언어가 미국화되는 것을 막는 일이나 '훌륭한 산문체'라 불리는 것과도 상관이 없다. 글말을 입말로 바꾸려는 시도와 관련이 없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의미가 단어를 택하도록 해야지 그 반대가 되도록 해서는 안된다. 구체적인 대상에 대해 생각할 경우 먼저 단어로 표현하지 말고 생각부터 해보자. 그런 다음 머릿속에 그려본 것을 묘사하고 싶다면, 거기에 맞을 듯한 정확한 단어를 모색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추상적인 무언가를 생각할 경우엔 애초부터 안어를 선택하는 쪽에 끌리기가 더 쉽다. 그러니 가능한 한 단어 사용을 미루고서 심상이나 감각을 이용하여 전하고자 하는 뜻을 최대한 분명하게 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다. 그런 다음 뜻을 가장 잘 담을 수 있는 표현을 택할 수 있을 것이고 그 이후에 반대로 자신이 택한 낱말들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인상을 줄 것인지 판단해도 좋을 것이다. 다음과 같은 원칙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1. 익히 봐왔던 비유는 절대로 사용하지 않는다.
2. 짧은 단어를 쓸 수 있을 때는 절대 긴 단어를 쓰지 않는다.
3. 빼도 지장이 없는 단어가 있을 경우에는 반드시 뺀다.
4. 능동태를 쓸 수 있는데도 수동태를 쓰는 경우는 절대 없도록 한다.
5. 외래어나 과학용어나 전문용어는 그에 대응하는 일상어가 있다면 절대 쓰지 않는다.
6. 너무 황당한 표현을 하게 되느니 이상의 원칙을 깬다.
지금까지 내가 다룬 문제는 언어의 문학적 사용에 대한 것이 아니다. 생각을 숨기거나 막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언어에 대해서만 다루어 본 것이다. (273-275)
(<나는 왜 쓰는가-조지 오웰 에세이> "정치와 영어", 조지 오웰/이한중. 한겨레출판, 2011, 255-276)
☞ 자기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작가들과 국어선생님들과 출판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언어를 맑게 하여 정신을 바르게 하고 마음을 맑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신과 마음과 삶을 맑게 하여 언어로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면에서 올바른 언어생활에 대해 가장 크게 신경을 써야 할 사람은 정치인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은 아쉽게도 이와 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의 말을 신뢰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거의 대부분이 권력에 대한 욕망과 자기가 속해있는 정당과 단체의 이권과 관련지어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정치인 아닌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습니다. 본인들은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언어를 혼탁하게 하는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발가벗은 임금님을 보는 것처럼 민망할 때가 많습니다. 조지 오웰은 말합니다. 세상을 바꾸고 자기가 원하는 좀 더 나는 사회로 만들기 위해 하는 정치라면 언어부터 맑게 해야 한다고. 이 시대 정치인들을 보고 그가 뭐라고 할 지 궁금합니다.
이런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행동이 바르고 건전하면 생각 또한 단순 명쾌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와 반대로 생각이 맑으면 행동이 바르다라고 장담할 수는 없고요. 생각과 삶에서 드러나는 행동의 이 차이를 항상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합니다. 최소한 글을 쓸때만이라도 생각을 바르게 하고 그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적절한 단어와 표현법을 사용하고 있는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