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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싶습니다생활글/생활 속에서 2020. 12. 17. 22:04
알고 있었지만 새롭게 인식되는 것이 있다. 지평이 넓어진 것이고 통찰이 깊어진 것이다. 내적으로 성숙했다는 표지이다.
배고픔이었다. 지적인 것에 관한 굶주림이었다. 매일 혹은 가끔 겪는 알 수 없는 것에 대해 알고 싶었다. 눈에 보이는 마을 너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궁금했다. 아기가 배가 고파할 때 먹고 마실 것을 충분히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몸이 불고 뼈대가 커지고 굵어질 수 없다. 어렸을 때의 지적인 호기심과 갈망을 채워주는 것이 부족했다. 가난한 시골 부모님은 역부족이었고 시골 선생님 또한 배 고파하는 아이에게 충분히 줄 수 없었다. 부보님과 선생님들 모두가 당신들이 하실 수 있는 최선의 것을 하셨겠지만, 어린 아이의 지적 호기심과 갈망과 갈증과 허기짐을 채워 줄 수가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의 이런 상태는 커서도 계속되었다. 어린 아이가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도록 기본적인 것이 주어졌다라면 좋았을 것이고, 이에 맞추어 당사자의 노력이 곁들여 지면서 좋은 기회를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좋은 선생님이 계시지 않았고 좋은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핑계대고 싶지는 않지만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혼자서 길을 만들어 가고 열어가야만 했었다. 어떤 사람처럼 한 번 물면 끝장을 볼 때까지 늘어지는 집요함도 없었던 사람에게는 힘든 상황이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것들에 대해 알고 싶은 것 뿐이다. 그것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 보겠다는 의도가 있어서가 아니다. 수도생활하면서 받은 교육은 좋은 것이었지만 겸손과 순명이라는 이름으로 나의 의기를 꺾어버린 면도 없지 않았다. 내가 책을 좋아하는 이유도 알고 싶다는 욕구와 갈망 때문이었다. 배운 것을 써먹여야 한다는 유용성에 대한 관심은 별로 없었다. 배부른 소리였을까? 그렇지만 그게 나였다. 백 프로 자기대로 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렇지만 자기가 진정 무엇을 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채 살아서는 안된다. 자기가 자기를 위로해주기 위해서라도 자기속에 깊게 자리잡고 있는 원의를 알아주고 인정해 주어야 한다. 그리스도교 신앙인으로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닮아가고 주님처럼 살아 윤지적으로 뛰어난 사람이 되고 성인이 되는 것에 대한 관심보다, ‘알고 싶다’는 것에 대한 것이 훨씬 우위에 있음을 인정한다. 내가 부정하고 싶어도 부정할 수 없는 나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