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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수요 오전반기도.영성/다네이 글방 2020. 7. 5. 22:52
2020.7.1.
수요오전반 후기입니다. 여행이라곤 꿈도 못 꿀 올 여름 저희는 호기롭게 여행을 시작했답니다. 고전읽기 덕분이지요. <열하일기> 첫 시간. 압록강을 건너 요동 벌판을 지나고 심양에 들어가 이틀 동안 밤 잠 아껴가며 놀다가 말복에 200리 나무 다리를 건너 소흑산이란 곳까지. 비도 잦고 더위도 심했지만 벗들이 있어 여행길은 즐겁습니다. 첫날은 모두 11명이 함께했답니다.<열하일기> 전 3권. 완역본에 도전한다는 게 만만치 않을텐데요. 책값도 적지 않고 무게 또한 부담되고요. 그럼에도 ‘우리 안에서 천천히 함께’ 무더위를 이겨가며 완독을 향해 출발한 모두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어떤 책이 좋을지 찾아보고, 홍보 영상을 만들고, 여행 전 사전 준비를 위해 작가와 시대배경을 조사해오는 열정 덕에 어려움 없이 첫 여정을 마쳤구요. 연암과 친구들인 백탑파가 모여 놀며 공부하던 곳이 종로라지요. 밥집과 찻집을 찾느라 종로와 청계로를 느릿느릿 걸으며 마치 연암처럼 가게들과 사람들을 구경하는 감회도 썩 좋았습니다.
연암이 열하에 다녀온 1780년(경자년) 이후 네번째 경자년이 올해라는 것. 때마침 여름 고전읽기로 이 책이 정해진 것도 운명이 아닐까. 걸어서 국경을 넘어본 경험이 없는 우리에게 240년 전 여름 세계의 중심이라는 중국 땅을 둘러보며 소회를 토로하는 연암의 여행은 부러움과 경이를 불러일으킵니다. 바이러스를 막겠다고 국경을 막고 하늘길도 막고 사람들 사이의 거리두기가 미덕인 된 요즘 삶의 여정이라 할 ‘여행’이란 무엇인지 곰곰 생각해봅니다.
연암은 조선과 청의 경계인 압록강에서 ‘도란 강물과 언덕의 중간 경계에 있다’고 하는데요.우리는 모두 어떤 경계에 서 있고 어느 한쪽에 있으려고 합니다. 한쪽 문을 닫으면 안전한 다른 쪽 문이 열리는 것처럼요. 특히나 자식들은 안전하고 좋은 것만 보며 살게 하고 싶지요. 가뜩이나 어울려 살기 어려워진 지금 강물이 언덕과 서로 만나듯 여러 사람과 허물없이 지낼 수 있으려면 어찌해야 할른지요.
압록강을 건너기 전 고향 생각을 하거나 중국의 규모와 기술에 기가 꺾여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연암의 모습이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또 낯선 풍물 앞에 조선을 떠올리고 조선에 이로울 것을 고심하듯 여행이란 낯선 길에서 익숙한 것들을 돌아보고 살피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수도생활 중 ‘성덕’에 이르는 방법 중 하나가 ‘주의(attention)'인데요. 나 자신과 주위, 현실의 경계들을 돌아보고 주의할 줄 아는 것. 그러려면 잘 깨어 있어야겠지요.
고등학생 딸아이가 ‘호곡장’을 알더군요. 요동 벌판이 한바탕 통곡하기 좋다는 곳이라며 이 얘기를 칠정과 갓난아기의 울음으로 연결시킨 연암의 사고를 교과서와 참고서는 어떻게 가르칠지 궁금합니다. 나는 언제 한바탕 통곡해본 적이 있던가. 의외로 너무 큰일을 겪으면 통곡조차 나오지 않고, 예상치 못한 대목이나 장소 또는 사람 앞에서 눈물이 터져나오기도 합니다. 자식에게 들킬라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던 적도 있구요.
무엇보다 연암이라는 인물 참 매력 있습니다. 태양인의 용모, 왕성한 체력, 못지 않은 지적 호기심, 섬세함, 질투심, 관찰력, 기억력, 무엇보다 계급적 한계를 넘어서는 열린 마음과 유머 감각들에 잘난 척 아는 척 사기당하는 인간적인 모습까지. 이런 사람과 여행하면 좀 피곤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벽돌은 돌만 못하고 돌은 잠자는 것만 못하지요.’ 연암의 하인 노릇도 쉽지 않구요. 어떤 남편, 어떤 아버지였을까요 연암은.
막상 읽어보니 그다지 어렵지도 않구요. 재미도 있습니다. 그런데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글나눔’이 더 어렵습니다. 나눔을 의식하며 책을 읽는다는 것은 마치 생각을 쥐어짜는 것 같아 부담스럽습니다. 머리 속에 든 게 많은 사람들은 표현하는 것도 쉬운가 봅니다. 여행이든 독서든 기록을 남기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진도 좋지만 스쳐지나가는 것들을 붙들어 묘사하고 나만의 기록을 남기는 연습을 해야겠어요.참외 파는 노인이 할머니라고 생각했네요. 눈물을 잘 흘린다는 표현에 여자라고 생각한 것. 이런 편견. 에잇, ‘간교한 영감탱이’ 같으니라구. 갓난아기의 울음은 눈물일까요 호흡일까요. 눈물 없이는 삶을 시작할 수 없고, ‘숨’ 없이는 생명이 없다고 정리해봅니다. 날라리 소리 요란한 상가집 풍경은 우리의 ‘죽음’을 대하는 태도와 사뭇 달라보이더군요.
연암은 “말고삐를 잡고 안장에 앉은 채 졸아가면서 가슴 속에 문자로 쓰지 못하는 글자를 쓰고, 허공에는 소리가 없는 문장을 쓰며” 열하를 향해 갑니다. 그 열정에 기대어 국경 없는 책의 뜨거운 바다로 벗들과 함께 계속 가렵니다. 다음 모임은 7월 15일, 1권 끝까지 읽고 종로에서 만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