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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금요 저녁반기도.영성/다네이 글방 2020. 6. 29. 21:55
우리 동네 방학동 연산군묘 앞에는 서울시 보호수 1호인 550년 된 은행나무가 있다. 가까운 곳에 유서 깊은 샘물 원당샘과 정의공주 묘도 자리한다. 본래는 암수 부부 나무로 존재하였으나 근교 아파트를 지으면서 암 은행나무는 잘리고 지금은 수 은행나무만 남아 있다. 나무 높이 25m, 가슴둘레 10.7m로 장대하고 수형이 아름답고 웅장하여 엄숙함이 느껴진다. 현재는 마을의 터주대감으로, 신목으로 버티고 있으면서 “한글날 축제 한마당” 글쓰기 대회, 노래 한마당과 먹거리 축제의 장으로 모여 놀이를 한다. 봄볕에 새로운 세상을 활짝 열고, 여름은 시원한 바람과 그늘 놀이터 , 가을에는 노오란 은행잎 꽃에 반하고, 겨울은 하얀 눈꽃 신의 침묵, 나는 은행나무가 자랑스럽고 존경스럽다.
아~~까시
나무라고?
그들은 나를 나무라고 한다.
나무라고?
허리가 굽고 몸이 뒤틀리며 힘겹게 버티는 나를
볼품없는 나무라고 한다.
쓰러지지 않기 위해 잔뿌리를 뻗어 땅을 힘겹게 해치는 나를
쓸모없는 나무라고 한다.
팔이 부러질까 굳은 의지로 새로운 가지를 선명히 돋우었더니
가시 나무라고 한다.오월의 따스한 태양 아래
순수의 향기가
그들을 불러 세운다
작은 주머니 실에 꿰어 주렁주렁 매달아
유혹의 향기에 취해
저절로 더 가파른 언덕으로휘말리지 않으려고
그들의 부름에 모른 체
눈 감고 입 다물며
외로운 섬으로 간다그러나
날 기억하고
멀리서 멀리서 찾아오는
그를
마중 나가리
그는 나를 생명이라고 한다.
나 또한 그를 생명이라고 한다.그들은 나를 꿀이라고 한다.
그들은 나를 나무라고 한다.지난 주에는 전주의 한옥 마을에 다녀왔다. 지붕하고 외관만 한옥인 듯 한옥 아닌 한옥 같은 마을이다. 서양 건물인 전동성당과 조선 태조의 어진이 있는 경기전이 바로 붙어 있어 묘한 감정이 떠올랐다. 건축가인 유현준 씨가 지은 <공간이 만든 공간>이라는 책을 그즈음 읽고 있었다. 인간이 공간을 만들어 살게 되는 인류사의 시작점과 그로부터 동/서양의 공간을 다루는 차이점, 그리고 현대를 지나 미래의 건축에 대해 알려주는 책이다. 낯익은 르 코르비지에와 안도 타다오의 건축물이 왜 대단하지도 다시금 알게 되었다. 한옥 양식은 창을 낼 수 있어서 바깥 풍경을 집 내부로 들여오게 하는 특징이 나타나게 된다. 한옥은 집안에서 밖을 내다볼 때 아름답다는 말이 이해가 된다. 건축물로 쓰이는 나무는 살아있지는 않지만 우리가 그 공간 안에서 몸을 기대고 그 냄새를 맡고 도구로써 사용한다. 기둥 치마 마루로 다시 태어나고, 관계에 대한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는 건축물을 다시 태어나 자연을 극복의 대상이나 지배의 목적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동양철학의 의미를 알려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내가 자란 강원도 영월군 한반도면 곡금리 마을은 누에고치 길러서 뽕나무 잎을 따곤 했다. 그러다가 뽕나무 열매 오디를 따서 먹고 손과 입 혓바닥까지 까맣게 물들인 어린 시절의 뽕나무, 학교 다녀온 후 뒤뜰에 앵두 따먹던 앵두나무, 옆집 작은 오빠네 집에서 따먹던 고야 나무, 앞집 친척 아저씨네 자두나무, 산야에서 친구들과 따먹던 보리수 열매, 가끔씩 오빠가 산에서 가져온 머루와 다래, 우리 집 옆에 심었던 사과나무와 대추나무 복숭아나무 살구나무 나는 유독 과실수들을 좋아했었다. 스피노자가 말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나는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 라고 했던 말을 좋아했다. 그리고 어린 시절 속상한 마음을 나무들과 어울려 있다 보면 나의 몸과 마음이 평화로운 상태로 변화된 것을 경험했기에 나는 나무를 사랑한다. 요즘은 코로나로 마음이 우울한 이때 더욱 나무에 대한 그리움 밀려온다. 그래서 아파트 산책하며 근처 뒷산을 자주 오른다.
노원구민신문 기자로 있을 때 '느티나무 김경희'라는 분을 인터뷰 취재한 적이 있다. 상계동 104 가구는 겨울 무료 연탄 나누기 행사 때면 TV에 나오는 가난한 마을이다. 느티나무 김경희 의사 선생님은 104 마을 주민들에게 무료 의료뿐 아니라 무료급식은 물론 어려운 가정을 직접 방문하셔서 애로사항을 들으시고 해결해 주시며 돌보시는 분이셨다. 주민들은 그분을 느티나무라고 했다. 어려울 때 항상 우리를 돌보아 주시고 우리의 느티나무로 바람과 그늘을 만들어 주시는 그분께서 오랫동안 봉사해 오신 것만큼 앞으로도 오랫동안 우리의 느티나무가 되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언제까지 의료봉사와 주민을 의한 삶을 사실 거냐고 물었더니 뜻있는 분들이 계속 봉사하기를 바라며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하고 싶다고 하셨다. 언제든지 찾아와서 쉴 수 있고, 더위를 식혀 주며 힘들고 괴로울 때 쉼터가 되어주는 느티나무. 우리나라 남한에는 1,000년 이상된 노거수가 64 그루 있다고 집계되는데, 그중 25 그루가 느티나무이다. 그중 13건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느티나무 행운이라는 꽃말을 가지고도 있다.
얼어붙은 나무들은 상상한 설경이 아닌 차갑게 죽은 듯 보였다. 산도 나무도 실망스러운 겨울이었다. 어느 날 민둥 산 나무들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봄이 오고 있었다. 앙상한 나무에 싹이 돋고 여린 싹은 차츰 꽃이 피고 푸르게 변했다. 너무 아름다운 순간들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모습은 뽐나며 숲은 짙어지고 손님까지 찾아들었다. 뻐꾸기 까치 참새 등 이름 모르는 새들과 벌레 개구리도 왔다. 파르르 울어대는 합창 소리, 구슬픈 저음 소리, 청아한 맑은 소리 대도시 청량제다. 때론 동이 트는 새벽 새들 수다는 고요함을 깨는 방해자가 된다. 나무들은 자라며 위대한 자연에 동참한다. 맑고 청량한 공기 편안한 시야 나무에 감사한다. 창밖으로 보이는 멋지게 성장한 청년 나무와 난 매일 그들과 집에서 데이트한다. 편안 옷을 입고... (최 막달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