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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생활글/생활 속에서 2020. 2. 28. 10:26
2월 28일, 금요일
지금까지 가장 오래 단식한 날 수는 30일이었습니다. 40대 초반이었습니다. 당시 '효소단식'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단식을 지도해 줄 사람이 없어도 자기 혼자 단식할 수 있다는 방법이라고 알려져 있었습니다. 효소를 판매하는 곳으로 가서 효소를 구입하고, 간단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매각되어 다른 수도원이 되어버린, 동해안 외딴 곳에 있는 수도원으로 갔습니다. 단식원에서 알려준 지침에 따라 단식을 하고 이어서 복식을 했습니다.
단식을 하고 단식을 끝내는 과정에서 그때까지 보이지 않았던 하느님이 보이지도 않았습니다.그분의 옷자락을 만져보지도 보지도 못했고 그분의 뒷모습도 보지 못했습니다. 한 달 동안의 단식이 젊은 날의 치기였을 수도 있었겠지만, 내 자신을 끊고 하느님을 향해 가고 싶은 마음만은 간절했습니다.
단식한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먹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생명의 젖줄인 먹는 것을 끊을 정도로 절박하다는 마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것을 차단하고, 자기 안에 들어와 있는 것으로 살겠다는 결연한 의지입니다. 지금까지 중요하다고 여기며 살았던 것들을 가치 서열에서 후순위로 미룬다는 뜻입니다. 외부적이고 인간적인 모든 것을 끊어버리고 생명의 원천인 하느님께 집중하고자 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외적인 단식과 내적인 단식이 하나로 되어 있지 않으면 안됩니다. 외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통해 내면을 다스리고, 내면의 것이 변화된 외적인 삶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먹는 것을 끊는 단식 뿐 아니라, 여러가지 끊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내외적으로 수없이 많은 단식꺼리들이 있습니다. 마시는 것과 보는 것과 듣는 것과 말하는 것 등, 오관과 관계되는 것들을 끊습니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탐욕, 시기, 분노, 슬픔, 교만, 위에 서고자 않는 마음 등을 끊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서 자기를 이기는 것입니다. 자기를 이긴다는 것은 우선 먼저 자기중심성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기중심성에 대한 자각을 하고 있는냐 아니냐는 그 사람의 성숙도를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척도입니다.
단식에 대한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몇 십 년 전의 일이 떠올랐습니다. 지금 이곳에 있는 저와 그때 그 사람은 똑같은 사람이지만 전혀 다른 사람이기도 합니다. 젊은 시절에 가졌던 그 마음과 결의와 열정이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내외적으로 그때보다 더 나아진 것도 있을 테고, 그렇지 않는 것들도 있을 것입니다만, 이것 또한 저의 모습이고 저의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