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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사신기도.영성/북앤샵 글방 2019. 11. 16. 13:48
11월 16일, 토요일
청 춘 의 사 신
<청춘의 사신>, 서경식/김석희, 창비, 2018
인터파크 명동 점, 북앤샵 글방
지난 달 북앤샵 글방을 마친 다음 몇 분과 뒷풀이를 했습니다. 그중 한 분이 물었습니다. “신부님, 왜 하필 랭보였습니까?” 랭보를 선정하게 된 이유를 시작할 때 잠깐 말씀드렸기 때문에 랭보 선택이 잘못되었나 싶어 반문했습니다. “왜요? 이상했던가요?” “예, 랭보의 시는 한참 반항하는 청소년들이나 청년들, 대학교 1-2학년들이나 읽어요.” “그래요? 저는 그런 것도 모르고, 50대 60대 분들에게 랭보 시를 읽으라고 했네요.”
이번 달 소개하기로 한 <청춘의 사신>에 대해서 “왜, <청춘의 사신>을 택했나요?”라고 물으면 지난 달처럼 “뭘, 몰랐기 때문입니다”라고 답해야 할 것 같습니다. 미술에 대한 문외한이고 서경식 씨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이유는 있었습니다.
북앤샵 글방에서 책에 대해 이야기를 한지 1년이 지났습니다. 기쁨과 보람도 있었지만,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첫 번째 어려움은 책을 선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8월 말, 이번 학기에 소개할 책을 찾으면서 미술에 관한 책이라면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쉽게 진행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서경식 씨가 쓴 <청춘의 사신>을 만난 것이었습니다. 서경식 씨에 대해서는 몇 년 전 <한겨레> 신문에서 그분이 쓰신 글을 통해서 조금 알고 있었습니다. 그분이 미술에 관해 글을 쓰리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의외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춘의 사신>을 택하게 된 것은 책 서문에 있는 창 이야기였습니다. 창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서경식 자신과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서경식이 쓴 다른 책들을 참고하여 그분의 가족에 대해 말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서경식의 할아버지(충청남도)는 1928년 서경식의 아버지가 여섯 살 무렵에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1945년 일본이 패전하자 할아버지는 한국으로 돌아가고, 서경식의 아버지는 일본에 그대로 남습니다. 이어서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나자 서경식의 아버지는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일본에 정착합니다. 서경식은 1951년에 태어났고, 그에게는 세 명이 형과 한 명의 누이가 있습니다.
이 중 둘째 형과 셋째 형이 1971년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감옥에 갇힙니다. 서경식의 어머니는 당신의 아들들의 옥바라지를 하다가 1980년 돌아가시고 3년 뒤에 아버지께서도 돌아가십니다. 그리고 셋째 형은 1988년 17년간의 옥살이를 마치고 출감하고, 둘째 형은 1990년 19년의 옥살이를 마치고 출감합니다.
서경식이 그림을 순례하기 시작한 것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1983년부터입니다그 때의 심정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지하실에 처넣어진 듯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그 지하실은 눅눅하고 게다가 공기가 점점 희박해져간다. 사방이 꽉 막힌 이 상황이 처음에는 2-3년쯤 갈 것으로 예상했는데, 5년이 지나고 7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도 끝날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형님들은 12년이 지났고 나는 하는 일없이 서른 고개를 넘고 있었다. 나에게 예술은 그 숨막히는 지하실에 뚫린 작은 창문 같은 것이었다. 작은 창문은 벽 높은 곳에 있어서 바깥 경치는 보이지 않지만, 하늘의 색깔 변화나 공기가 흐르는 기미를 느낄 수 있었다. 손은 닿지 않고, 창문으로 도망칠 수도 없지만 그 작은 창문 덕에 살아 남을 수 있었다.”(<청춘의 사신>, 9-10)
창은 문과 달라 사람들이 쉽게 오고가거나 드나들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창을 통해서는 보이지 않은 것들이 자유롭게 오갑니다. 인간의 문화가 오고가고 사람들의 생각과 관점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것입니다. 공간을 점령하고 있는 문과 달리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 수 있는 자유로움이 특징입니다. 요새 우리가 소통을 말하는데, 문을 통한 소통과 교류가 제한적이라면 창을 통한 소통과 교류는 그 어떤 제한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앞에 열려있는 창을 통해서 서양 사람이 동양을 볼 수 있습니다. 동양 사람이 서양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로마에 계시는 교황님께서 중동에 있는 이슬람 사원을 볼 수 있고, 중동에 있는 무슬림이 조계사에서 불공을 드리고 있는 불자를 볼 수 있습니다.
창에 관한 이야기를 좀 더 해 볼까요. 아무래도 성당에 있는 창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쉽겠죠. 성당에 있는 창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는 것이 스테인드 글라스로 장식된 창미창일 것입니다. 그 화려함과 아름다움에 넋을 잃습니다. 그리고 성당 천정에 뚫려 있는 창도 있습니다. 그 창을 통해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도 아주 멋진 광경입니다. 예를 들면, 베드로 대성전 뒤편 천정에도 창이 있습니다. 성령을 형상화한 비둘기 그림이 있는 그 창을 통해서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이 성당을 밝게 해 줄 뿐 아니라 신비하고 거룩한 곳으로 만들어줍니다. 바르셀로나의 성가정 성당에도 하늘을 향해 뚫린 창이 있습니다. 그 창을 통해 들오온 빛이 성가정 내부를 동화의 나라처럼 만들어갑니다.
예술이라는 창이 있어 숨을 쉴 수 있었다는 서경식의 말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창을 통해서 자신의 어둠을 훔쳐 볼 수 있었고 자신의 불확실한 미래를 넘겨다 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는 숨을 쉴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다면 어떤 경우에도 살아남을 수가 있다는 말로 들렸습니다.
<청춘의 사신>이라는 책 제목에 대해서 말하고자 합니다. 무슨 내용일지 감이 잡히지 않죠. 이 책을 번역한 김석희 씨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청춘의 사신>이라는 아리송한 그러나 왠지 입맛 당기는 신파조의 제목에 흥미를 느낀 분도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저자인 서경식 씨도 왜 ‘청춘의 사신’이라는 제목을 붙였는지 설명해 주지 않습니다. 다만 에곤 실레의 <죽음과 소녀>라는 그림게 관한 글의 제목이 <청춘의 사신>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림과 서경식 씨의 글 사이에 관련을 지을 수가 없었습니다.
<죽음과 소녀>라는 그림은 에곤 실레와 그의 모델이지 연인이었던 발리 노이찔에 관한 그림입니다. <에곤 실레>라는 영화를 보면 에곤 실레가 자기가 결혼하고자 하는 새로운 여자가 나타났을 때 에곤 실레와 헤어지는 장면을 그린 것입니다. 발리가 에곤 실레 자신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장면이 있는데, 이것을 그린 것입니다. 청춘이 에곤 실레를 발 리가 죽음의 신처럼 붙잡고 있었다는 이야기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서경식 씨가 말해주지 않기 때문에 저는 이렇게 풀이하고자 합니다.
먼저, 청춘입니다. 청춘이라고 할 때 열정을 첫 번째로 꼽습니다.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들고 도전하고 자신의 온 정신과 마음과 힘을 쏟아 붙은 것입니다. 삶에 대한 열정, 일에 대한 열정, 사람에 대한 열정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서경석은 재일 동포로 살면서 자기가 감당해야 했던 차별과 소외감으로 청춘이지만 청춘과 관계없이 지낼 수 밖에 없었던 자신에 대해서 말하고자 했을 것입니다. 그의 가족이 껴안지 안으면 안되었던 시대의 아픔으로 열정적으로 될 수 없었던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사신’이라는 말입니다. 신이 없는 세상이 아니라 신이 죽어버린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스스로 죽을 수 없는 신이기 때문에 사람이 신을 죽인 사회라는 것입니다. 서경식이 어떤 신을 염두에 두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신이라고 할 때 사람들은 자비로움과 관용과 인간을 살리는 생명의 원천을 떠올립니다. 그런데 이 신이 죽은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신이 없는 세상에서는 인간만이 남게 됩니다. 인간만이 남아 있는 세상, 인간중심적이고 인간이 살만한 곳이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는 이와 정반대되는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역사에서 인간의 야만성이 두드러진 때가 많았습니다만, 서경식은 20세기 초와 전반부는 다른 어떤 때보다 이 야만성이 판을 치던 때였다고 봅니다. 세계적으로는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의 폭력과 파괴와 인종차별과 대량 학살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제의 침략과 6.25을 전후한 폭력과 파괴와 동족살인을 체험했습니다. 그러면서 ‘인간이 이다지도 무자비할 수 있는가’를 묻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인간의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하는가를 묻게 되었습니다. 서경식은 아마 이런 시대를 인간이 신을 죽여버려 신이 소리를 내지 못하는 시대로 보았던 것 같습니다.
서경식은 자신의 젊은 시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창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이 창은 개인에게 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 창을 통해 자신의 어둠을 보고, 너의 어둠을 봅니다. 그 창을 통해 우리 마음속에 있는 어둠이 흘러나오게 해야 합니다. 그 창을 통해 인간의 고귀하고 숭고한 정신이 그러나게 해야 하고, 인간 내부에 있는 거룩함이 흘러나오게 해야 합니다. 이런 창이 없거나 막혀 있게 되면, 인간은 야만 자신의 야만성에 따라 살게 됩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본 것을 밖으로 표현하고자 합니다. 이런 일에 가장 민감한 사람들이 예술가들입니다. 예술가들은 자기들이 본 것을 드러내고자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 삶에 이런 창이 있는가 없는가에 가장 빨리 쉽게 깨달을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술가들이 예언자적인 입장에 서는 경우가 다른 사람에 비해 많다는 말입니다. 20세기 초와 전반부에 암울한 시대였다면, 이 암울함을 표현하고 밝혀내고자 했던 예술가들이 많았다는 말입니다. 서경식은 그중에서 미술 분야에서 그런 일을 하려고 했던 몇 사람을 소개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읽으셨거나 보았던 책속의 그림이 무거울 수 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시대에 저항하고, 인간을 무시하는 것을 반대하면서 살면서 화가들이 그림을 그렸기 때문입니다. 서경식 자신의 삶과 가족이 헤치고 건너왔던 세월의 무게 때문에 책과 그림이 무거울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서경식은 예술작품을 볼 때, 예술가를 보려고 애썼다고 합니다. 예술작품이 예술가 자신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서 “잘 살지 못하는 예술가한테서는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없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잘산다라고 하는 말은 윤리적으로 올바른 사람이라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예술가의 삶이란 무엇보다도 창조하고자 욕망에 충실한다는 말이고 그것을 독창적으로 표현하려고 혼신의 힘을 기울이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청춘의 사신>을 읽을 때 저는 미술작품과 더불어 그 그림을 그린 사람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청춘의 사신>에 나오는 미술가들의 삶 자체가 드라마처럼 여겨졌습니다. 청춘의 사신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에드바르드 뭉크는 살았을 때에도 죽음과 환각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제가 처음 들어보는 일본 화가 후지따 쯔구하루의 파란만장한 삶은 한 편의 소설같이 드라마틱했습니다. 평범하게 산 미술가도 많겠지만, 제가 아는 많은 미술가들의 삶은 평범함과 상당이 거리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왜 미술가들의 삶은 다른 예술가들의 삶에 비해 드라마틱할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청춘의 사신>에서는 마르크 샤갈과 샤임 수틴을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둘 다 동유럽 출신 유대인인데, 샤갈은 자기의 과거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수틴은 자신의 과거를 지우려는 사람이다. 그래서 샤갈은 색채의 마술사답게 강하지만 부드럽고 자신의 종교 유대교의 전통을 그림으로 많이 표현합니다. 종교적인 주제의 그림이 많아 그리스도인들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수틴도 샤갈처럼 강렬한 색상을 사용합니다. 그렇지마 소재 자체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고, 그것이 지나치게 강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최소한 저에게는 거부반응을 느껴지게 하는 그림이 많습니다.
미술의 문외한이어서 청춘의 사신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미술가가 낯설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중에서 펠릭스 누수바움의 삶은 정말 드라마틱하게 여겨졌습니다. 그이 아버지는 독일이 유대인들을 받아주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독일의 기병대에 근무하기도 했습니다. 펠릭스 누스바움은 함부르크와 베를린에서 공부를 했고, 로마의 독일 아카데미의 초청으로 여자 친구와 함께 로마로 가서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독일에 나찌 정권이 들어서면서 조국 독일로 돌아갈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벨기에로 들어가지만, 벨기에서조차 ‘볼모 외국인’으로 남 프랑스의 생 씨프리앙 수용소에 감금되었습니다. 이 수용소를 탈출하여 벨기에로 돌아오지만, 그곳에서 부인과 함께 체포되어 1944년 8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해당합니다.
이런 삶의 여정 때문에 펠릭스 누스바움의 그림은 부드러울 수가 없습니다. 그가 자신을 그린 자화상이 몇 편 있는데 모두 워리어 전사처럼 강합니다. 잠시 수감되어 있었던 수용소의 그림은 암울하기만 합니다. 자신의 불안과 불만과 소외감과 분노등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유대인 증명서를 들고 서 있는 자화상>을 보면 그것이 극에 달합니다. ‘그래 나는 유대인이다. 내 오른쪽 가슴부분에는 이스라엘의 별인 노란 유대인 딱지가 있으며, 여권에도 유대인이라고 찍혀 있다. 조국 독일로부터 쫒겨 났고, 조국에 의해 죽음으로 몰리고 있는 사람이다. 왜 내가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가. 누가 나를 이렇게 떠돌이로 만들었는가’라고 그림을 보는 사람에게 질문을 하고 있는 듯합니다. 골목 마지막까지 몰린 사람으로서의 절망과 낙담, 분노고 가득한 얼굴입니다. 그렇게 우리를 바라보면서 우리의 답을 요구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유대인이었기 그림을 사람들에게 드러낼 수가 없었고 치과의사에게 맡겼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기는 죽더라도 그림은 죽지 않게 해 달라’고 부탁했답니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치과의사에게 맡긴 그의 그림이 1970년대에 재발견 되어 급속도로 평판이 높아졌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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