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예술작품과 예수고난기도.영성/Spicul 2019. 12. 5. 11:51
12월 5일, 목요일
문화.예술작품과 예수 고난
창조자 하느님
하느님께서 세상 모든 것을 만드셨다. 창조의 엿샛날에 인간을 만드셨다. 창세기에서는 이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그가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집짐승과 온갖 들짐승과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창세 1, 26-27)
창조의 본능을 지니고 있는 인간
창조자이신 하느님을 닮았다는 것은 인간 또한 하느님처럼 무엇인가 창조하고자 하는 본능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 이런 인간관을 호모 파베르라고 한다. 호모 파베르(Homo Faber)는 도구를 만드는 인간이라는 뜻이다. 인간은 자신의 생활에 필요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며,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상징을 통해 표현하기도 한다. 인간은 유형, 무형의 도구를 만드는 동시에 자기 자신도 만든다는 견해다. 인간의 본질을 도구를 사용하고 제작할 줄 아는 점에서 파악하는 인간관은 베르그송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후에 실용주의로 발전해 나가 현재에도 막강한 힘을 과시하고 있다.
하느님 창조의 동반자인 인간
하느님께서는 당신 혼자 이 세상을 만들어 가지 않으신다. 인간과 더불어 이 세상을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어 가신다. “주 하느님께서는 동쪽에 있는 에덴에 동산 하나를 꾸미시어, 당신께서 빚으신 사람을 거기에 두셨다.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데려다 에덴 동산에 두시어 그곳을 일구고 돌보게 하셨다.”(창세 2, 8.15) 하느님의 창조가 일회에 완결된 것이 아니라, 인간을 통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이 생각은 과학에서 말하는 진화론과 얼마든지 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
인간과 문화
창조본능을 갖고 있고 창조자이신 분의 동반자인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것을 문화라고 한다. 문화는 인간의 삶과 관계되는 모든 것들이기 때문에, 인간의 삶을 문화라는 관점에서 살펴보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할 때, 신앙생활안에 있는 인간이 창조했던 보물을 알아차리고 향유하고 감사하며 이것을 토대로 미래를 향해 나가게 된다.
사회의 개인이나 인간 집단이 자연을 변화시켜온 물질적·정신적 과정의 산물을 문화라고 한다. 문화는 그것이 표출되는 맥락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서양에서 문화라는 말은 경작이나 재배와 동일한 말에서 출발한다. 즉, 문화란 자연 상태의 사물에 인간의 작용을 가하여 그것을 변화시키거나 새롭게 창조해 낸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정치나 경제, 법과 제도, 문학과 예술, 도덕, 종교, 풍속 등 모든 인간의 산물이 포함되며, 이는 인간이 속한 집단에 의해 공유된다.
문화는 흔히 인간 정신과 사고가 최고도로 표현된 것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위대한 문학, 미술, 음악 등에 대한 지식과 실천을 통한 정신적 완성의 추구라는 열망이 담겨 있다. 우리가 문화인이라는 용어를 쓸 때, 뛰어나고 수준 높은 교양을 가진 사람을 의미하게 되는 바로 그 문화의 개념이다. 문화 개념에 기초하여 오래 동안 비평가들은 최상의 작품을 찾는데 몰두해왔고 문화를 뛰어난 것을 판별하고 감상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문화와 상징
인간은 상징체계를 통해 사회를 경험하고 인식하며 다른 인간과 상호작용과 의사소통을 한다. 인간이 한 사회의 구성원이 된다는 것은 그 사회에 이미 존재하는 상징체계를 습득하여 사용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이며, 그 상징체계가 반영하고 있는 사회의 질서와 규범, 즉 생활양식을 따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어떤 사회의 관습, 가치, 규범, 제도, 전통 등을 총체적으로 이해한다는 말이다. 이것은 그 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삶의 양식과 상징체계를 받아들이고, 그 사회의 질서와 규범, 가치를 따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화는 천성적으로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교육되는 것이며, 역사 속에서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문화”에서)
그리스도교와 문화
그리스도교는 유대 문화로부터 출발하였지만, 이 유대문화를 비판하면서 등장한다. 예수는 이스라엘의 부흥을 대망하고 있었던 유대 민족주의와 대결한다.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라는 인격적 관계에서만 참된 사람이 될 수 있음을 말하며 율법주의적인 유대교를 비판한다. 기존 유대교 문화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가르침과 행위로 십자가형에 처해지지만 그로부터 부활하여, 그 당시와 전혀 다른 믿음과 삶의 형식을 제시한다. 예수로부터 시작된 이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로마 지역으로 진출하여 서양문명과 문화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서양 문화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다.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에 바오로는 복음의 유대주의화와 막기 위해 노력하면서 그 시대의 그리스의 언어와 사고방식과 문화를 채택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 후 그리스도 교회는 복음의 헬레니즘화를 막기 위해 많은 이단 논쟁을 거쳐 교리를 확립하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따랐고 순교자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후 아우구스티누스와 중세의 토마스 아퀴나스와 수많은 신학자와 영성가들과 수도자들과 왕들과 귀족들과 예술가들에 의해 독특한 그리스도교 문화가 형성되었다. 이후 루터에 의한 종교 개혁의 정신과 인문주의적인 사상,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상 등이 그리스도교 문화속으로 홍수처럼 밀려들기 시작했다.
그리스도교와 문학
서구 문학 작품은 신앙을 긍정하건 부정하건 간에 그리스도교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다. 그리스도교 문학이라 하면 일차적으로 신앙을 옹호하거나 북돋아 주고 신앙과 관련된 것에 대해 호의적인 것을 말한다. 그렇지만 신앙을 철저하게 무시하거나 배척하는 작품들도 그 밑바탕에는 그리스도교 문화가 깔려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앙적 입장에서 보는 가치와 문학적 가치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성서는 내용과 그 번역을 통하여 여러 가지 면에서 문학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구약성경』 역사서와 예언서는 유대교 역사는 아니지만 유대인의 역사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시편과 지혜서는 그 자체로서 아름다운 문학작품이기도 하다. 『신약성경』의 네 복음서와 바오로 서간 또한 그 자체로 뛰어난 문학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성경』처럼 다양한 언어로 번역된 책도 없을 것이며, 그렇게 많이 읽힌 책도 없을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소재로 만들어진 소설과 시와 희곡은 그 수를 셀 수 없을 정도이다.
그리스도교의 영향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는 작가 중 몇 명은 다음과 같다. 성 아우구스티누스(『고백록』), 단테 알리기에리(『신곡』),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 셴키에비치, 지드와 모리악과 토마스 만, 그레이엄 그린, 크로닌 등이 있다. 이외에 시인으로서 프랑스의 크로델, 독일의 릴케, 영국의 엘리엇 등을 들 수 있다.
그리스도교와 회화
그리스도교는 유태교와 마찬가지로 원칙적으로 우상숭배에 대하여 부정적이어서 도상묘사에 대하여 때때로 논쟁이 일어났으며 때로는 이를 파괴하려는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그리스도교는 회화예술을 긍정하고 이를 보호 육성해 왔다. 그리스도교 회화에 대해 말 할 때, 외적 조건으로는 그리스도교적 소재를 다룬 것이고 내적 조건으로서는 그리스도교 신앙으로부터 탄생된 그림이어야 한다고 한다. 이러한 의미로서의 그리스도교 회화는 주로 중세에 시작되어 중세에 가장 많이 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근세 이후에도 뛰어난 작품이 많이 나왔음은 말할 것도 없고 현대에 들어와서도 뛰어난 그림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중세의 회화는 '문맹자를 위한 성서'라고 일컬어진 것과 같이 글을 읽지 못하는 민중을 위한 성서·외전(外典)·성인의 이야기와 교리 등 모든 가르침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도상표현에는 일정한 약속이 있었다. 즉 물고기·포도나뭇가지·양치기에 의하여 구세주를 상징하고 비둘기로서 하늘나라에 올라가는 영혼을 상징하였다. 이러한 소박한 상징주의는 이어서 신학의 심화와 더불어 더욱더 복잡한 것으로 되어 갔다. 회화의 장식표현으로서 중요한 것을 들어보면 로마네스크 시대에 꽃피었던 교회의 벽화, 고딕 시대 스테인드글라스, 그리고 중세 전체를 통한 성서의 삽화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일정한 공간을 메운다는 장식적 역할을 하는 동시에 그 도상표현에 의하여 교화적 의미를 지니는 것이 많았다.
그리스도교 음악
그리스도 교회의 예배에 사용되는 음악을 가리키나 넓은 의미에 있어서는 교회의 축제일과 그 밖의 경우에 있어서 대중에게 성서의 진리를 보여주고 이를 들려주기 위하여 교회에서 사용하였던 음악도 포함시키고 있다. 일반적으로 음악과 종교의 관계는 매우 깊고 오랜 것이며, 특히 그리스도교에 있어서 그 관계는 더욱 밀접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미 초기 그리스도 교회에 있어서 시편을 집전자와 회중이 교대로 노래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리하여 중세 초기에는 음악의 예배적 성격도 정리되어 그레고리안 성가 성문화되고 이것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로마 가톨릭 교회 음악의 중심적 지위를 갖게 되었다.
가톨릭이 교회 공통의 교리와 예배음악을 갖는 데 대하여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각파는 각 교파에 따라 상당히 다른 음악을 사용하고 있다. 가톨릭 교회의 복잡한 다성음악에 대하여 개신교에서는 회중 전체가 노래할 수 있는 단순한 합창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17, 18세기의 이른바 바로크 시대에는 이러한 합창을 중심으로 하는 세련된 음악이 많이 출현하였고 바흐에 이르러 프로테스탄트 음악은 절정에 달한 셈이다.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뛰어난 음악가에 의하여 많은 걸작 종교음악이 만들어지고 있다.
교회건축
그리스도 교회와 건물과의 상관관계를 보면 ‘교회’와 건물이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교회’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에 대해 처음부터 예배를 보는 장소로서 중요한 곳이었다. 또 ‘교회’는 종종 지상에 있어서의 하느님의 집으로서 그 자체가 신성시되었으며, 또 죽은 자를 기념하는 장소로서, 일상의 집회와 휴식의 장소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여 왔다. 그러므로 교회 건축은 그리스도교인들이 가장 주의를 기울이게 되는 것이며 또한 그리스도교 예술의 핵심을 이루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대규모 교회건축이 시작되는 것은 그리스도교가 공인된 이후부터이며, 이 4세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교회에 대한 신학적 해석의 변천과 건축기술의 발달에 따라서 실로 다양한 건축양식을 만들어냈다.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의 기본적 양식으로서 납작한 지붕으로 된 장방형 평면의 바실리카식과, 돔 또는 볼트(vault) 천장을 가진 원형과 다각형 평면으로 된 집중식을 들 수 있다. 다음으로 비잔틴식은 돔의 집중식 구조를 장방형 또는 장방형의 평면에 채용한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뒤에는 그리스 십자형 평면이 이 양식의 대표적인 것이 되었다. 이에 대하여 로마네스크식은 11, 12세기의 서부 유럽 지역에서 널리 채택되었던 양식으로서, 지역에 따라 각각 독특한 양식을 만들어내게 되었으며, 그 공통된 특색으로는 바실리카 방식을 채택하면서 중량 있는 석재와 벽돌로 천장을 받치도록 구성된 것이다. 따라서 이 양식은 벽면의 무게감이 현저하고, 대체적으로 건물 외관이 중후한 느낌을 준다. 이것의 뒤를 이은 고딕식은 대표적인 건축물을 현재에도 볼 수가 있다. 중세 예술의 정수를 모아놓고 웅장하고 아름다운 이 건축양식은 당시 크게 위력을 떨쳤던 중세 그리스도교 정신을 반영한 것이며, 또한 새로운 기술개발의 성과이기도 하였다. 특히 종래의 벽체 구조가 갖는 역학적 결함을 기둥 구조에 의하여 해결한 것이 그 뒤의 그리스도교 예술에 커다란 변화를 주게 하였다.
예수님의 고난에 대한 작품들
모든 종교는 절대자를 경배하고 그 예배에 참석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여러 가지 도구와 상징을 적극 사용했다. 이슬람과 유대교에서 감각적인 것을 통해 하느님을 표현하려 하는 것을 억제한 것과 비교하면 아주 큰 차이가 있다. 그리스도교에서는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는 하느님을 사람들이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게 하는데 최선을 다했다. 이렇게 하면서 그 시대 문화의 원동력이 되었고, 그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 작품이 양산했다.
그리스도교와 관련된 모든 소재처럼 인간의 창작 본능을 자극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교의 핵심에 하느님이시며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에 그렇다. 인간이 하느님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인간 자신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느님과 인간이라는 두 영역을 넘나들면서 창작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 범위가 넓어지고 깊어질 수 밖에 없었다.
이런 많은 소재 중에서 가장 흥미를 끌었던 주제가 바로 예수님의 고난(수난)이다. 예수님의 고난이 인간의 고난과 고통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고난을 인간이 감히 가까이 할 수 없는 하느님의 고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의 고통처럼 할 이야기가 많은 것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 인간의 고통을 신비 중의 신비라고 하지 않던가.
예수님의 고난에 대해 표현한 작품들은 그 시대 사람들의 애환이 담겨 있고 그 시대 사람들의 끈질긴 희망의 표현이다. 그리고 예수 고난을 표현한 작품들을 보면서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을 이해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창을 갖게 되는 것이고, 그것을 통해 예수님의 고난을 살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예수고난에 대한 영성을 심화시키는 하나의 좋은 수단인 것이다. 영성이라는 것이 생활과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성이 개인 또는 공동체가 지닌 믿음과 그 표현의 총체. 영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도와 성령의 도움으로 형성되며 그리스도교 신앙에 입각한 신관과 세계관, 윤리관, 가치관을 모두 포함한다. 영성은 하느님과 자기자신, 이웃 그리고 세상에 대한 자기 초월적 사랑으로 형상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 이 상 -
예수님의 고난과 관련된 문화.예술품들
문학: 『침묵』(엔도 슈사쿠), 『페스트』(까뮈)...
음악: 수난곡들, 스타밧 마떼르, 십자가 찬미...
회화: 상처를 보여주는 그리스도...
조각: 삐에타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