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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슬픔기도.영성/Spicul 2018. 5. 26. 09:38
5월 26일, 토요일
소설을 읽으면서 그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이나 주변 인물에 감정이입이 되어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어린 아이들 같은 경우에는 소설속의 인물과 자기자신을 동일시 할 가능성이 많지만, 어른들은 이것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어른들에게는 소설속의 인물이 처한 입장과 비슷한 자기 체험이 있을 때에야 쉽게 공감대가 형성된다.
신경숙의 『깊은 슬픔』읽고 있다. 소설속에 등장하는 사건들이나 사람들의 말과 행동이 낯설지 않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소설속의 내용 자체에 공감하고 몰입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이것보다는 이런 것들이 나의 기억과 쉽게 연결이 되고, 지금까지 내가 체험했던 일들과 유사하면 할수록 더 쉽게 더 많이 공감하게 된다. 이런 사람의 이런 일은 내가 체험한 이런 일과 유사하고, 이 사람의 이런 말은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 이런 경우에 했었고 또 이런 경우에 했을 것 같은 말이군, 이런 식이다. 소설속에 등장하는 사람과 그들이 했던 말들을 통해서 자신의 삶과 만나게 된다는 말이 더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소설가의 기억과 상상력과 삶과 소설을 읽고 있는 독자의 기억과 상상력과 삶이 하나가 되는 시간인 것이다. 이런 동일화의 체험을 통해서 책을 읽는 사람은 정화되고 승화된다고 한다. 정화되고 승화된다는 말안에는 자신과 화해하게 되고, 내적인 치유가 이루어진다, 자신과 사람들을 보는 안목이 높아지고 깊어지고 넓어진다 등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깊은 슬픔』의 은서의 독백과 대화를 통해 드러난 그의 삶을 보면서 은서와 비슷한 처지에 있었던 사람을 더 깊게 이해하게 되었다. 완과 세의 말과 행동을 보면서 이해할 없과 받아들일 수 없어 고민했던 현실속의 나의 모습과 어떤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고 받아들을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기도 했다. 더불어 이 소설은 1994년, 작가가 아주 젊었을 쓴 것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징인물의 내적인 묘사와 대화가 젊은 작가 자신이 그런 경험을 이미 충분히 하고 난 뒤에 쓰여진 것처럼 생각되어 작가의 상상력과 통찰력이 놀랍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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