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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을 보다기도.영성/북앤샵 글방 2019. 5. 19. 11:48
5월 19일, 일요일
북앤샵 글방 <향기로운 책>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전에는 버스나 기차 타는 시간이 쉬는 시간이었고 기도하고 묵상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일때문에 하는 여행이지만 작은 기쁨이었습니다. 얼마 전부터 같은 자리에 몸을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는 시간이 힘들게 되면서 이런 기쁨은 사라지고 불편함만 남게 되었습니다. 터널과 터널 사이를 지나면서 멀리 보이는 산의 싱그러움과 아름다움도 즐길 수가 없었습니다. 송홧가루가 온 산을 덮어 안개자욱한 것처럼 보이는 골짜기를 지나고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며 잎들이 파도처럼 움직이고 색깔이 꿈틀거리며 변할 때에도 무덤덤했습니다.
터미널의 번잡스러움과 시끄러움을 뚫고 명동으로 갔습니다. 5월 <향기로운 책>을 진행하기로 한 수녀님과 점심을 먹기로 한 약속 때문이었습니다. 서울을 서울 공화국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듯이, 우리나라가 서울을 중심으로 되어있음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밀고 밀려가는 사람들과 거대한 물결처럼 흘러가는 자동차와 사람들의 목소리를 파묻어버리는 소음과 성공신화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좋은 기회와 삶과 사업에 실패하여 좌절과 절망속에 빠져있는 사람들로 넘쳐 나는 곳 같았습니다. 두 시에 <향기로운 책> 시작인데, 1시 20분이 다 되었습니다. 사람들을 헤치고 가면서 수녀님께 제가 좋아하는 떡만두국을 주문해 놓아라고 부탁했습니다. 휴게소에서 호두과자를 몇 개 먹었지만, 배가 고팠습니다. 식사를 마칠 때쯤 인터파크로부터 5월 <향기로운 책>에 대한 연락이 없었다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보통 한 주간 전에 확인을 했던사람들이었습니다. 당혹스러웠습니다. 서둘러 식당에서 나왔습니다. 다행히 이미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이번 달에 이야기를 나누게 될 <빈센트 반 고흐: 태양을 보다>(발터 니그) 강의에 대한 기대가 있었습니다. 지난 달 <섬>(장 그르니에)에 대해 독특하고 깊이 있게 해석해 준 수녀님께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시간 30분이 어떻게 지나는지 모르게 지나갔습니다. 고독했고 사랑 가득했던 한 인간으로서의 사람 고흐와 그림에 자신은 온 삶을 쏟아부었고 그림을 통해 자신을 말하고 그림을 통해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려고 했던 예술가 고흐, 평생 하느님을 찾고 추구했던 신앙인으로서의 고흐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강의를 들으면서 저렇게 할 이야기가 많고 나누고 싶고 나누어 주어야 할 보화를 많이 갖고 계신 분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떻게 하다보니', 우리나라의 중심이고 신앙의 중심지인 명동에서 시작했던 일이 어디로 나갈지 어떻게 나가게 될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이 말합니다. '하느님은 숨어계신다'고. 숨어계신 하느님을 드러내게 하는 것은 사람의 움직임이 있을 때 가능합니다. 사람들이 가려진 휘장을 열어젖힐 때 그속에서 빛나는 십자가를 보게 됩니다. 사람들이 바이올린의 현을 켤 때 존재하지 않았던 소리가 들리게 됩니다. 사라들이 땅을 파고 벽돌을 쌓을 때 멋진 집 한 채가 나타나게 됩니다. 창조주 하느님께서 일하고 계시듯이 그분과 함께 일하고 창조하는 삶으로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수없이 많은 사람들, 여러가지 소리로 뒤엉켜 있는 거리, 비싸고 화려한 상품더미 속에서 주님의 아름다움을 우러르고 생명이신 주님을 어떻게 선포할 것인가를 잠시 생각하게 한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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