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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대축일생활글/생활 속에서 2019. 4. 21. 17:15
4월 21일, 일요일
긴 성삼일의 전례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전례를 통해 전해지고 있고 선포되고 있는 것이 가슴과 영혼에까지 파고들어 절절하게 다가오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을 경축하고 있는 사람들과 더불어 그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믿고 있다는 증거다. 이런 믿음의 공동체와 함께 자신의 믿음이 보존되고 자기가 의식하든 의식하든 믿음이 성장하고 심화되기 때문이다.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애초부터 인간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도해 나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부활대축일이다. 중국 형제 한 명의 종신서원식과 더불어 대축일 미사를 했다. 전례는 종합예술이다. 무엇보다 인간의 오감이 총동원된다. 참석자들 또한 오감뿐 아니라 자신의 인격까지 참여하도록 해야 하고, 그런 은총을 간구해야 한다. 서원식과 서품식에서 좋아하는 기도가 성인성녀들의 호칭기도다. 상당히 긴 기도고, 무릎을 꿇고 있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가장 좋아하는 기도다. 땅에 엎드려 있는 후보자를 위해 모두 기도하는 시간이다. 살아있는 사람들의 기도도 부족하여 돌아가신 분들, 성인성녀들의 전구를 청한다. 기도문 자체에 있는 언어 자체가 모두 거룩한 단어들이다. 그런 단어와 더불어 있다는 것 차제로 그 전례에 참예하고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복된 시간이기 때문이다. 후보자가 가고자 하는 길, 그가 살고자 하는 삶의 양식이 얼마나 복된 것인지 드러내는 시간이다. 반대로 그의 길이 얼마나 험난할지를 예고하는 시간이라 생각해도 된다. 어려움과 고통없이 주어지는 기쁨은 없기 때문이다.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라는 논쟁을 하곤한다. 부활이 먼저냐 죽음이 먼저냐라는 순서에대해서도 이와 비슷한 논쟁을 할 수 있으리라. 개인 차원에서 볼 때, 고통과 죽음을 경험한 다음에 부활을 경험하는 것처럼 보여진다. 그러나 신앙의 역동성과 신앙 공동체라는 개인보다 큰 차원에서 볼 때, 부활을 경험한 사람들의 증언과 고백이 있어 후대 사람들이 믿는 것이기 때문에 부활과 죽음의 순서로 바뀌기도 한다. 인간과 삶의 고통과 그 고통의 정점인 죽음을 통과하지 않고 부활을 알수 없고 받아들을 수 없다. 머리와 지성으로 어렴풋하게나마 알아들을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은총이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이 이마 태초에 예견된 것이라는 성경의 말씀을 이루어 가고 있는 예수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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